함경아는 작품을 만들 때 이야기를 좇는다. 새로운 작품을 구상할 때 대중에게 말할 이야기를 우선순위로 둔다. 설치 작업, 비디오, 퍼포먼스와 전통 재료 등의 다양한 재료는 이야기를 위한 도구일 뿐이다. 이야기에 적합한 표현 재료와 매체를 찾다 보니 작업 범위가 자연스레 넓어진 것이다. ‘Chasing Yellow’ 작품을 위해서는 노란 옷을 입은 사람들을 취재하기 위해 비디오 카메라를 들었고, 어릴 때 귀했던 바나나가 저렴해진 이유를 찾으려 필리핀행 비행기에 오르기도 했다. 도쿄 시부야의 경찰과 나란히 선 채 경찰관을 흉내 내는 우스꽝스러운 퍼포먼스도 했지만, 이번 국제갤러리에서 선보이는 전시에는 그녀가 직접 만든 작품이 한 점도 없다.
2008년부터 시작된 함경아의 자수회화 시리즈 작품은 멀리서 보면 크게 뽑은 사진처럼 보인다. 갤러리에 들어왔을 때 처음으로 눈에 들어오는 건 ‘What you see is the unseen/ Chandeliers for Five Cities 04’. 비단 위에 샹들리에의 형상을 수놓은 작품이다. 얼핏 보면 작가가 직접 자수를 놓아 작품을 만든 것으로 생각되겠지만, 모든 자수작업은 중국을 통해 북한으로 보내져서 제작됐다. 작가는 인터넷에 떠도는 기사나 사진을 조합했고,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의 도안을 북한 출입이 가능한 제3자를 통해 북한 여성들에게 전달했다. 북한 사람들이 직접 짠 노란 천 위에는 같은 노란색으로 글씨가 쓰여 있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는다. 이렇게 함경아의 작품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과정이 더 중요하고, 관객에게 작품 속 이야기를 스스로 찾는 과제를 준다. 작품명 아래에는 실제 재료인 실뿐만 아니라, 1800시간 동안 자수를 놓은 ‘북한 노동자’, 도안과 완성물을 주고받아준 ‘중개인’, ‘검열(Censorship)’과 ‘불안감(Anxiety)’도 작품의 주재료로 적혀 있다. 해설 없이 그냥 전시만 보면, 천 안에 쓰여 있는 글귀를 찾을 수 없다. 자수 솜씨가 좋다고 감탄만 한 채 전시장을 나설 수도 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