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경기도 광주의 한 복합문화공간. 1층 카페로 들어서자 온통 푸른 식물로 가득 찬 한쪽 벽면이 눈에 들어온다. 손가락보다 훨씬 큰 잎을 지닌 몬스테라, 작은 몸통이 촘촘하게 가시로 뒤덮인 선인장, 축 늘어지며 길게 자라는 탓에 벽걸이처럼 화분을 높게 걸어두어야 하는 행잉 플랜트까지 마치 식물원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잠깐 거닐기만 해도 몸이 정화되는 것 같은 이 장소는 사실 지속적으로 운영되는 매장이 아닌 ‘슬로우파마씨’의 팝업 스토어. 팍팍한 도시에 식물이 있는 일상을 제안하는 이들은 이렇듯 의뢰가 들어온 장소를 식물로 스타일링하거나, 쇼룸과 팝업매장을 찾는 고객에게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반려식물을 추천한다. 광고디자이너로 활동하던 이구름 대표는 28년째 꽃집을 운영 중인 어머니와 6년 차 플로리스트인 언니를 통해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식물을 접했다. 식물을 직접 키우는 소소한 행복을 전해주고 싶었던 그녀는, 우선 집에서 작게 키울 수 있는 식물과 키트를 구상했다. 투명한 작은 비커에 흙과 선인장을 옮겨 담은 ‘비커 선인장’과 밀폐된 투명 유리 화병 속에 이끼와 피규어를 함께 넣은 ‘이끼 테라리움’이 바로 그렇게 탄생한 작품. 특히 이끼 테라리움은 흙, 돌, 장식용 피규어를 따로 포장한 DIY 세트를 판매해 흙을 원하는 만큼 층층이 깔고, 이끼와 피규어를 직접 장식할 수 있게 했다. 팝업 스토어를 방문하면 살 수 있는 식물이 수십 가지가 넘는다. 하지만 온라인으로는 제한된 종류만 주문할 수 있다. 이유를 묻자, 꽤 단호한 대답이 돌아온다. “아끼던 식물이 가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너무 화가 나요. 본인이 출장을 자주 가는지, 집이 통풍은 잘되는지, 신중한 대화를 통해 분양하고 싶은 게 저희 욕심이에요. 직접 드리는 게 저희가 식물을 가장 예쁘게 드릴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제대로 책임질 수 없을 것 같은 고객에게는 정말로 식물을 팔지 않기도 한다. 오히려 ‘구매하는 대신 쇼룸에 자주 놀러 오라’고 친절하게 회유한다. “식물을 키우면 진짜 삶이 바뀌는 걸 경험할 수 있어요.” 빠른 효능의 약 대신, 천천히 자라는 생명과 함께하는 느린 삶, 침착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이들의 처방은 신통하게도 그 효능을 인정받는 중이다. 브랜드와 협업해 이벤트 공간을 디자인하거나 식물을 이용해 전시를 하는 등 활동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 덕분에 이들의 손길이 닿은 자리는 미술관, 백화점을 막론하고 싱그러움이 가득하다. 좀 더 가까이에서 ‘그린 라이프’를 즐기고 싶은 사람이라면 일단 반포동 쇼룸을 방문하면 된다. 식물에 관한 모든 지식과 애정을 공유하려는 자세로 당신에게 꼭 맞는 처방전을 쥐어줄 것이다. 그게 작은 거실이든 넓은 정원이든, 방법은 모두 이 ‘느린 약국’에서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