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상가 근처에는 숨어 있는 맛집이 많다. 허름한 골목 안에는 간판 없는 닭도리탕집, 줄 서서 먹는 냉면집, 오래된 갈비탕집 등 맛있는 식당이 많아 매번 보물상자를 찾은 기분이다. 작업실에서 조금 걸어가면 나오는 광장시장에서 종종 빈대떡과 마약김밥을 먹는다. 시장 한가운데 놓인 가판대에서 친구와 수다를 떨며 먹는 빈대떡은 그 어떤 레스토랑 음식보다 맛있다. 시장의 시끌벅적한 느낌도 좋다.
14:00 세운상가 작업실 근처에서 재료 구매
설치 작업을 자주 하다 보니 온갖 공구와 재료가 필요하다. 제일 많이 쓰는 재료는 테이프와 스프레이 페인트. 작업량이 많을 땐 일주일 사이에도 재료가 금방 떨어지는데 세운상가 주변에서 저렴하게, 그리고 많은 양의 재료를 구할 수 있다. 곧 ‘빠키 로봇’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해본다.
16:00 작업실 앞의 에바다 휴게소와 세운 영 레코드
작업실 바로 앞에 ‘에바다 휴게소’가 있다. 주인아주머니와 자주 수다를 떤다. 이곳에서는 2000원이면 물통 하나 가득 담아주는 미숫가루를 먹을 수 있다. 엄마가 해준 것 같은 정겨운 맛이다. 점심을 거른 날은 끼니로 대신하기도 한다(미숫가루를 먹기 위해 작업실에 나올 때도 있다). 미숫가루를 마시면서 바로 열 발걸음 떨어져 있는 ‘세운 영 레코드’에 간다. 작은 공간이지만 예쁜 자개장 안에 LP판이 빼곡히 꽂혀 있는 게 마음에 든다. 세운상가 작업실에도 중고 턴테이블이 있다. 자주 듣는 뮤지션은 데이비드 보위,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음악과 80년대 디스코 장르의 음악들.
친구가 운영하는 제비다방이 집 근처에 있어 음악 듣고 싶을 때 자주 들른다. 올 때마다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1층 라운지에 앉으면 뻥 뚫린 홀 아래로 지하에서 공연하는 뮤지션이 보인다. 혼자 가도 아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일요일
7:00 필립 볼과 시작하는 하루
일요일도 평소와 별로 다르진 않다. 음악 듣고, 차 마시고 책을 읽는다. 하지만 스마트폰 때문인지 예전보다 온전히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줄었다. 책 읽는 양도 이전보다 많이 준 것 같아 주말 오전에는 책 읽는 데 시간을 많이 보낸다. 요즘은 과학 저술가 필립 볼(Philip Ball)의 형태학 3부작 시리즈 중 하나인 "흐름"을 읽고 있다.
무대륙의 쉐어링 보드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메뉴다. 나무 도마에 샌드위치와 수프, 샐러드, 요거트가 같이 나와 친구들과 먹기 좋다. 이곳 브런치를 먹으며 요즘 작업이나 관심사에 대해 얘기를 하고, 각자 노트북으로 작업을 한다. 음식보다는 공간 자체를 더 좋아하는데 햇빛이 잘 들어오고 작업에 집중하기도 좋은 분위기다. 맥북을 올려놓기 적당한 높이의 테이블도 맘에 든다. 작업하다 심심하면 가끔 즉흥적으로 지하 공연장에서 열리는 뮤지션들의 공연을 보기도 한다.
15:00 황학동 구경하기
혼자 산책을 잘 다니는 편이다. 주말 아침에는 종로, 을지로 일대의 골목을 자주 걷는다. 날씨가 좋을 때는 황학동 풍물시장부터 만물시장이 열린 길을 구경한다. 여행 다니며 그 나라의 벼룩시장에서 물건을 자주 사는데, 오래된 것들이 모여 있는 벼룩시장의 분위기가 특히 좋다. 낡은 라디오와 카세트테이프, 인형 등을 구경하고 만지는 걸 좋아한다.
오후의 행선지는 구슬모아당구장. 대림미술관의 프로젝트 스페이스다. 원래 당구장이었던 곳을 개조해 만든 실험적인 공간이라 매력적인데, 이곳에서 "빠키: 불완전한 장치"라는 제목으로 개인전을 하게 됐다. 그래서 요즘은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전시장을 방문해 관람객들의 반응을 살피며 다음 전시와 작품에 대해 구상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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