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은 언제나 ‘뉴미디어 아티스트’이자 ‘전위예술가’로 불렸다. 당시에는 세상을 놀라게 했던 뉴미디어 아트지만, 2016년의 사람들을 같은 감흥으로 놀라게 할 수 있을까? 아이폰에 블루투스를 연결해 작품 설명을 듣는 이들에게 구식 모니터로 신선함을 주기엔 무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2016년 현재, 백남준 선생님이 살아있다면 누구와 함께 어떤 작업을 할까?”라는 상상에서 출발했다는 이번 <백남준쇼> 전시 기획자의 말을 역으로, 오히려 당시의 사회를 되짚어가며 그가 얼마나 진보적인 작가였는지를 환기한다면 좀 더 풍부한 마음으로 전시를 감상할 수 있다. 더구나 올해는 서거 10주기를 맞아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는 그의 전시다.
역사가 되어버린 그의 첫 개인전은 언제였을까? 1963년 독일 부퍼탈에서 열린 ‘음악의 전시회: 전자 텔레비전’이다. 12대의 TV와 4대의 피아노, 기계음 장치를 설치했던 전시로 오늘날 비디오 아트가 발전할 수 있었던 출발점으로 평가 받는다. 당시 31살이었던 그가 첫 개인전을 열었던 것은 반세기도 전의 일. 한국에서 최초의 흑백 TV가 출시된 것이 1966년 임을 감안한다면, 1932년생인 백남준이 한국의 같은 세대에 비해 문화적, 물질적 ‘세계화’를 상당히 빠르게 경험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렇듯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로 불리는 그의 전시답게, 이번 특별전도 수 많은 모니터로 가득 채워져 있다.
출생부터 사망까지 간략하게 정리해 벽에 붙인 그의 연보를 지나면 본격적인 전시의 시작이다. 로봇이나 사람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구형 TV이 군단이 지그 재그 모양으로 줄지어 관람객을 맞이한다. 한글은 못 떼도 닌텐도 게임은 클리어 한다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에게 특히 특히 나무로 만든 TV 상자는 낯선 그림이다. 오래된 제품을 작동시키기 위해 여기저기 끌어모은 콘센트와 전압 변환기 까지 총동원된 뒷 모습도 꽤 재밌다. 1989년 프랑스 정부가 혁명 200주년을 맞아 의뢰했던 작품 ‘전자요정’의 시리즈 중 하나인 ‘마라(MARAT)’과 ‘다비드(DAVID)’를 함께 전시한다.
이어지는 방에서는 좀 더 인간적인 작가 백남준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작품을 구상하기 위해 직접 아이디어를 손글씨로 적어내린 메모와, 드로잉, 사진작가 임영균이 가까이에서 기록한 백남준의 모습을 전시한다. 특히 1935년 찍은 가족사진을 판화기법 중 하나인 에칭으로 작업한 작품 ‘비밀 해제된 가족사진’이 흥미롭다. 어머니, 누나, 큰사촌누나 등 온 집안의 가족이 담겼는데, 아주 더운 여름날 백남준 어머니의 제안으로 모든 사람이 남장을 한 채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그가 직접 하얀색 팬으로 가족 관계를 일일이 적어놓았다. 그의 첫번째 피아노 선생님과 큰누나 백희덕, 어머니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전시에서 작가가 생전에 사용하던 물건이나 지인들과 주고받은 문서를 접하는 것이 그다지 희소한 경우는 아니다. 하지만 어딘가 초인간적으로 느껴질 만큼 유명한 아티스트의 사적인 면모를 들여다 보는 것은, 언제나 묘한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데가 있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돔 형의 전시장에 자리잡은 1993년 작품 ‘거북’이다. 무려 166개의 모니터를 사용한 이 작품은 사실 잦은 고장과 설치의 어려움으로 작년 청주 국제 공예비엔날레를 마지막으로 안녕을 고했다. 이 작품의 컬렉터가 거주하는 미국으로 반환될 것이라 했으나 어찌된 일인지 올해 DDP에서 다시 사람들을 만난다. 대신 전시장의 바닥에 시시각각 변화하는 최첨단 4D그래픽을 함께 모셔왔다. 물살처럼 일렁이는 그래픽은 입체영상을 전문으로 제작하는 디스트릭(D’strict)이 디자인을 맡았다. 4층 계단 위에 올라 영화를 보듯 감상할 수 있다. 20여 년 의 차이를 둔 ‘미디어아트’를 한 공간에서 만나볼 수 있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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