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살 때 루마니아 예술 학교에서 처음 만나 지금은 부부가 된 댄과 리아 퍼잡스키. 댄은 미술관 벽면에 마커로 만화 같은 낙서를 하는 작업으로 알려져 있고(실제로 루마니아 신문사에서 매주 일러스트 작업을 연재한다), 리아는 전 세계의 미술관 아트숍에서 수집해온 물건과, 과학과 미술사를 공부하며 손으로 필기해온 노트와 사진을 거대 설치 드로잉으로 엮는 작업을 한다. 개별적으로 작업하는 이들이 토탈미술관에서는 ‘지식박물관’을 함께 꾸몄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시 오프닝 날 작가들을 찾았다. 댄은 2리터짜리 삼다수 병을 텀블러처럼 들고 나타나 말끝마다 농담을 던졌고, 리아는 작업 하나하나를 박식한 사학자처럼 친절하게 설명했다.
전시를 위해 댄은 마커 네 자루, 그리고 리아는 설치할 물건들만 간단하게 챙겨왔다.
댄 작고 비싸지 않은 물건들로 값진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의 신념이다. 1월부터 토탈미술관으로 보낸 엽서들은 전시 첫 번째 부분에 설치되어 있는데, 이 작업을 하는 데 30달러 정도 들었다!
리아의 ‘지식박물관’은 지구, 몸, 예술 등 7개 부서로 구성된 일종의 삼차원적인 도표라고 할 수 있는데, 글은 모두 영어로 쓰여 있다. 한국 관람객은 작업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리아 사진과 물건들. ‘이 물건들은 왜 여기에 이렇게 전시되어 있는 거야? 난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워!’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관심을 갖고 집중하면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다. 인생과 똑같다. 어려운 일을 도맡아 해석해주는 번역가는 없으니까. 스스로 해답을 찾으려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
벽에 직접 그린 댄의 드로잉에서 식스팩을 머리에 단 사람이 돋보인다.
댄 사람들은 배에 식스팩을 만드는 데 온힘을 다한다. 그런데 머리는? 그게 정말 중요한데(나같이 식스팩이 절대 생기지 않을 사람이라면 더욱). 이렇게 유머 코드를 넣으면 작업은 관람객과 소통하기 쉬워진다. 내 드로잉을 보면 12년 동안 예술 교육을 받아온 게 티가 나지 안 나지 않나?
둘 다 사회적인 이슈를 작업의 주제로 다룬다. 작업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곱씹을 비평적인 질문을 제시하려는 것인지 궁금하다.
댄 나는 정치 운동가가 아니지만 내 드로잉은 뉴스에서도, 시위 운동에서도 전 세계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리아 예술로 세상을 바꾸는 것. 이런 ‘매직 파워’가 나에게 주어진다면 모두가 기본적인 지식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시키고 싶다. 하지만 작업으로 정치를 하고 싶은 건 아니다. 내가 잘하거나 배워온 종목도 아니다. 나는 공산주의 국가에서 자란 루마니아 여자고, 민주혁명 후 25년간 전 세계를 여행했다. 이 행성의 시민으로서 세상 곳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운이 좋게도 교육을 받았지만,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은 대부분 스스로 무엇을 잘하는지 모르는 것이 안타깝다. 빵을 잘 굽는지, 머리를 잘 자르는지 모르니까.
장소가 아닌 시대에 영향을 받는 작업을 한다고 했다. 서울과 연관된 작품도 있나?
댄 꽤 많다. 박스로 만든 집에 자리 잡은 노숙자, 그의 머리 위에 있는 다리, 그리고 그 위를 달리는 자동차를 보고 작업한 드로잉이 있다. 삶의 수준을 세 가지 층으로 나누어 보여주는 셈이다. 이렇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선보이기도 하지만, 전에 그렸던 이미지를 변형해서 지금 장소와 시간에 맞게 다시 그리기도 한다. 난 천재가 아니니까. 기발한 아이디어는 3주에 한 번꼴로 나온다.
리아 첫 번째 층에 보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구입한 잠수부 모양의 램프가 있다. 물과 바다를 연상시키기 위해 바닥에 놓았다. 설치된 물건 중 ‘예술’에 대해 생각하라고 유도하는 작업은 거의 없다. 남자 운동선수와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자 피규어를 벽에 나란히 놓은 건 결혼에 대한 사람들의 강박을 표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