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 스포츠(Jan sports)라는 한 미국 브랜드의 백팩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교복을 줄여 입은 학생들은 끈을 꽉 조여 맨 각기 다른 색의 가방을 거북 등딱지처럼 메고 다녔다. 그 다음엔 레스포삭(Lesposac)이, 또 언젠가는 키플링(Kipling)이 그랬다. 한국의 중고생들은 시대별로 브랜드를 바꿔가며 비슷한 가방에 열광했다. 작가 박초록도 그런 아이들 중 한 명이었다. 부모님을 졸라 유행하는 옷은 다 사 입어야 했고, 남들이 어떤 옷을 입고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누구보다 관심이 많았다.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누구보다도 획일적인 집단문화에 동화된 삶’을 살았다. 그런 그녀에게 사람들의 복장에 물음표를 던지게 된 계기가 생긴다.
촬영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비슷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를 방문해 그들에게 무작정 부탁을 하는 방식이었다. 거절하는 사람들 틈에서 몇몇 사람을 설득해 겨우 촬영에 성공해도, 촬영 동의서에는 사인을 해주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 애써 찍어놓고 발표하지 못한 작품도 많다. 평균 촬영시간은 단 5분. 사람들이 카메라 앞에 섰을 때 셔터만 누르면 되도록 준비를 단단히 하는 것 또한 작가의 몫이었다. 결국 작가 박초록은 비슷한 성별, 나이대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현실적인 모습을 프레임 안에 담아내,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한국의 사회적 통념을 드러낸다. 작품을 마주한 관람객은 너무나 닮은 인물들의 차림새에 얼핏 웃음을 짓다가도, 분명 특정 무리 안에 스스럼없이 동화될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게 된다. 급격한 변화와 성장의 이면에 획일화된 집단 의식과, 판에 박힌 군중의 모습을 드러내는 ‘다이내믹 코리아’.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종류가 다른 패턴의 자기복제를 계속하는 한, 작가 박초록의 기록도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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