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촌에 위치한 보니스 피자 펍 건너 편에는 더 앨리 벙커라는 작은 지하 바가 하나 있다. 언제나 편안한 음악과 유쾌한 대화가 손님을 반기는 곳. 이곳의 대표인 잭 안(Jack Ahn)과 뉴질랜드 출신의 뮤지션 포나무(Pounamu)가 함께 푸근한 분위기로 꾸며낸 공간이다. "사람들과의 소통이 주가 되는 안식처죠." 잭 대표는 말한다. "저렴한 테라피라 할 수도 있어요." 포나무가 덧붙인다.
이곳에는 생맥주의 이름이 표기되어 있지 않다. 조금은 당황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는 부분이다. 여기에 얽힌 이야기는 2015년 7월에 잭이 처음 바를 열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가 같은 맥주를 더 싼 가격에 판매하는 것을 본 주변의 다른 바 주인이 그에게 화를 냈던 것. 하지만 창의적인 성향의 잭은 생맥주 가격을 올리는 대신 생맥주의 상표와 이름을 가리는 방법을 택했다. 대체 어떻게 주문하냐고? 더 앨리 벙커에서는 모든 생맥주를 주문 전에 시음해볼 수 있다. 맛을 본 후 마음에 드는 맥주를 주문하면 되는 것. 잭은 손님들이 상표나 이름에 영향을 받지 않고 오로지 맛으로만 맥주를 선택하게 된다는 점이 좋아 이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
더 앨리 벙커에는 맥주 외에도 다양한 칵테일과 샌드위치 메뉴가 구비되어 있다. 시그니처 칵테일은 ‘호텔 줄리엣(Hotel Juliette)’. 잭 대표가 열대 무궁화와 생강을 이용해 직접 만드는 에일 맥주를 제임슨 위스키와 혼합해 낸다. 보드카 베이스로, 예거마이스터와 파인애플 주스의 조화가 좋은 ‘벙커 온 베케이션(Bunker on Vacation)’도 단골에게 인기다. 주문 즉시 만들어내는 그릴 치즈 샌드위치와 풀드 포크 샌드위치는 호텔 줄리엣과 페어링 하기에 딱이다.
가성비 좋은 술과 음식 외에도 더 앨리 벙커를 찾게 되는 이유가 또 있다. 바로, 다양한 지역 예술가들이 모인다는 점. 매주 수요일에는 지역 뮤지션들이 모여 자유롭게 합주를 벌인다. 매주 일요일 오후에 열리는 ‘스쿨 미(Skool Me)’ 행사에서는 누구든 무료로 기타 레슨을 받을 수 있다. 뮤지션이자 이 지역의 유명인인 포나무가 직접 진행한다. 매달 월요일 밤에는 격주로 ‘불평의 밤’ 행사가 열린다(누구든 마음에 쌓인 불평을 오픈 마이크 형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주말에는 포크와 재즈, 록 등 다양한 장르의 라이브 공연을 볼 수 있다.
이곳의 음료는 3000원에서 1만2000원으로 부담 없는 가격이 매력적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더 앨리 벙커의 단골이 되는 진짜 이유는 이곳에 모이는 사람들에 있다. “매일 밤 이곳에서 어떤 일지 벌어질지 전혀 알 수 없어요. 조용하고 느긋한 밤이 될 수도 있고, 멋진 사람들과 즉흥으로 음악을 연주하거나 한껏 춤을 추게 될 수도 있죠” 더 앨리 벙커의 단골 알레시아 자네이로(Alecia Janeiro)는 말한다. 그리고, 해방촌 주민인 필자의 팁 하나. 보니스 피자 펍 앞으로 늘어선 대기 줄을 기다리기 싫을 때, 피자를 포장해서 이곳을 찾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글 : 에스더 율렌홉(Esther Uhlenho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