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를 위해 방문했지만 두고 두고 찾게 될 곳을 만나는 것, 에디터로서 언제나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그런 직감이 너무 강해 오히려 걱정스러워지는 곳도 있다. 최근엔 한남오거리의 리첸시아 아파트 뒤쪽, 한적한 골목에 자리한 옥스 바(OX Bar)가 그랬다. 40평 정도의 어둑한 지하 공간에서 스테이크와 칵테일을 전문으로 한다는 옥스 바의 프로필은, 실력 있는 믹솔로지스트와 세심한 홀 서빙 매니저, 그리고 장인정신을 가진 주인에 의해 손님을 위한 특별한 경험으로 나타난다.
조금은 비밀스럽게 펼쳐진 계단을 따라 바 내부로 들어서면 푸줏간을 연상시키는 공간이 먼저 눈에 띈다. 물론, 장식의 용도는 아니다. 한 마리씩 들여온 소고기가 세심한 손질을 거친 후 최상의 상태에서 조리돼 나오는 이곳에선 꼭 필요한 공간이다. 앉은 직후 서빙되는 웰컴 드링크는 송송 썬 대파가 띄워진 한국식 곰탕. 콘셉트를 위한 장치이겠거니 생각했는데, 뜨끈한 국물을 한 숟갈 뜨니 서울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을 수준의 정직하고 깔끔한 맛이다. 병에 든 생수와 함께 준비되지만, 커버 차지는 없다. 메뉴는 티본(T-bone) 스테이크를 비롯해 로스트 비프(Roast beef), 송아지 정강이 고기에 토마토 소스를 얹은 오소부코(Ossobuco) 등으로, ‘옥스(Ox)’라는 이름에 걸맞게 모두 소고기 요리다. 사용되는 부위의 숙성 정도에 따라 적절히 구워 낸다. 고기를 주문할 때 원하는 굽기 정도를 묻지 않는다는 말이다(따로 원하는 굽기가 있다면 직원에게 별도로 부탁할 수 있다). 그렇게 간단히 주문해 나온 고기의 맛은, ‘적절하다’는 표현에 수긍이 가게 한다. 먹기 좋게 썰린 밝은 선홍색의 조각들은 부드러운 질감과 함께 입 안에서 탄력을 발휘하고, 마지막에는 미묘한 감칠맛을 낸다.
그런 이유에서일까, 바에는 칵테일 주문이 쉴새 없이 밀려든다. 그럼에도 바텐더들은 한결같이 여유로운 기교로 칵테일을 만들어낸다. 바 섹션을 담당하는 이수원 매니저는 클래식 칵테일에도 일가견이 있지만, 함께 팀을 이룬 최범규 바텐더와 함께 옥스 바를 통해 영리한 조합의 다양한 생과일 칵테일을 소개하고 있다. 바 카운터 위에 놓인 석류, 사과, 레몬, 파인애플 등을 후하게 넣어 내는데, 클래식 진 피즈(Gin fizz)에 한라봉을 조합한 ‘한라 피즈’는 청량감과 밸런스가 좋다. 한라봉 한 개를 통째로 넣었다지만, 신맛과 단맛, 알싸한 맛 중 어느 하나 지배적인 맛 없이 상쾌하다.
옥스 바의 서비스와 맛, 분위기의 표면은 정제성과 능란함이다. 모두 상당한 것이지만, 그 안에 담긴 특별한 진정성과 경쾌한 고지식함이야말로 이곳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다. 이곳을 알게 된 이상 매일 저녁 퇴근 후 모범생처럼 집에 가는 생활을 이어나가긴 힘들어질 것이다. 하지만 미각뿐 아니라 마음이 즐거워지는 곳이 있다는 건, 행복한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