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오거리의 리첸시아 아파트 뒤쪽 골목, 한남 리커는 상호와 주소를 알아도 지나치기 쉬운 바다. 초행이라면, 눈에 잘 띄지 않는 짙은 색 문과 영문 알파벳으로 표기된 ‘한남 리커(Hannam Liquor)’라는 상호명을 꽤나 집중해서 찾아야 한다. 어떤 공간이 나올지 알 수 없는 채로, 가파른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고급스러운 느낌의 부티크가 나타난다.
이곳 부티크 섹션에서는 400여종 이상의 다양한 주류를 판매하는데, 와인뿐 아니라 다양한 화이트 스피릿을 구비하고 있다. 그 중 단연 눈에 띄는 종류는 국내에선 접하기 힘든 생 조지(St. George) 진과 럼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생산되는 프리미엄 크래프트 진, 생 조지의 종류는 모두 세가지. 가장 심플하다고 할 수 있는 생 조지 떼루아(Terroir)는 ‘토양,’ ‘삼림’을 의미하는 이름처럼 울창한 숲을 연상시키는 향이 특징이다. 두 번째, 보타니보레(Botanivore) 진은 월계수 잎, 고수, 시나몬, 회향 씨앗, 생강, 라임 껍질 등 19가지의 식물향을 한 모금에서 느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생 조지 드라이 진은 호밀로만 만들어져 곡류의 향이 풍부하다. 생 조지에서 생산하는 럼도 이곳 부티크에서 만나볼 수 있다. 캘리포니아산 사탕수수로 제조된 생 조지 어그리꼴(Agricole) 럼(저가 럼은 대개 당밀로 만든다)은 부드럽고 청량감 있는 끝 맛이 좋다. 한남 리커의 부티크에는 매니저인 김민주 소믈리에가 상주하며 각 주류에 관한 상세한 설명을 제공한다. 이곳에 들어올 때의 특별한 느낌에 대해 이야기하니, 이 공간의 콘셉트가 ‘젠틀맨들의 은밀한 놀이터’이라 답한다. 온전히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한남 리커의 부티크 섹션 안쪽으로는 유리벽으로 분리된 바가 보인다. 생각보다 아담하고 아늑한 공간이다. 부티크에서 판매하는 진과 럼은 모두 이곳 바에서 잔술이나 칵테일로 마실 수 있다. 바를 담당하는 강근혁 바텐더는 “메뉴에 없는 칵테일도, 새로운 칵테일도” 정성을 다해 만들어낸다. 바에 착석을 하면 1인당 5000원의 커버 차지가 있다. 약간의 견과류와 물(혹은 산 펠레그리노 탄산수)이 포함된 가격이다. 단순하지만 고상하게 꾸며진 실내, 7여개 남짓의 바 좌석과 단 두 개의 테이블. 이걸 두고 ‘젠틀맨들의 공간’이라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적당히 어둑한 실내에서 골동품 촛대에 올려진 촛불이 은근히 설레는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어, 적어도 이곳 바 섹션은 연인에게 가장 어울릴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련되고 비밀스런 동굴 같은 이곳, 혹 조짐이 좋은 데이트가 생긴다면 에디터는 주저 않고 다시 한남 리커를 찾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