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초, 서울 동부이촌동에는 여러 채의 아파트들이 건립됐다. 대부분의 아파트는 재건축된 지 오래지만, 한강맨션아파트는 아직도 처음 모습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적한 길가에 낮게 서있는 한강맨션 상가 또한 오래되고 쇠퇴한 모습. 작은 개인병원과 문구점 등으로 채워져 동네 주민만이 가끔 드나드는 이곳에 타지인들의 발길을 조용히 끄는 곳이 있다. 바로 가내 수공업을 연상케 할 정도로 모든 커피를 공들여 로스팅•추출하기로 유명한 헬카페의 2호점, 헬카페 스피리터스다. 아침과 낮에는 카페로, 밤에는 바로 변신하는 공간이다. 스타 바리스타 임성은, 권요섭, 이훈이 볼트 +82의 서용원 바텐더와 손잡고 연 공간으로 마니아층을 꾸준히 늘려나가고 있다.
내부 공간엔 테이블과 바 카운터, 술이 진열된 선반, 창가를 덮은 블라인드 등 모든 것이 어두운 색의 목재로 꾸며져 있다. 1호점과 마찬가지로 스피커에서는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대형 테이블엔 꽃이 장식되어 있지만, 훨씬 고요하고 점잖은 분위기다. 헬드립 커피, 클래식 카푸치노 등 헬카페 1호점에서 판매하는 카페 메뉴와 함께 칵테일과 싱글몰트 위스키, 럼 등의 주류를 구비하고 있다. ‘싱글 몰트 위스키계의 롤스 로이스’라 불리는 맥캘란 레어 캐스크와 오렌지 비터, 메이플 시럽을 넣어 만든 롤스 로이스에서는 세련되면서도 안정적인 조합을 느낄 수 있다. 이곳을 방문했을 때 잊지 않고 주문해야 하는 메뉴는 아이리시 커피다. 스모키함이 두드러지는 강렬한 맛이지만 동시에 섬세하고 탄탄한 조화가 인상적이다. 블렌딩이 잘되어 완벽한 층을 이루는 크림은 가볍고 촘촘한 질감으로, 한 모금에 에디터의 미소를 자아냈다. 조금씩 음미해야 할 듯한, 혼자 즐기기엔 아까운 맛이다.
‘이촌동 한강맨션 31동 208호’라는 주소를 알고 있어도 단번에 찾기는 쉽지 않다. 길가에 서서 상가 위쪽을 한참 올려다봐도 대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게 느껴진다. 하지만 헬카페 스피리터스를 나서는 길에 드는 생각은 조금 달랐다. 적당한 무거움과 달콤함이 공존하는 분위기, 무서울 정도의 성실함이 녹아있는 완성도 높은 커피와 칵테일은 이 지역의 변치 않은 모습과 썩 잘 어울린다는 것. 특별한 예술가적 기교를 대할 때, 약간의 수고스러움은 응당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