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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 갇힌 톰 행크스처럼 돈 없이 하루를 버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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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0 아무것도 먹지 않고 밖을 나섰다. 간단하게 카메라랑 교통카드만 챙겼다.

10:00 자전거를 빌리려고 청계천으로 걸어갔다. 아파트 경비실같이 생긴 작은 유인 대여소에서 신분증을 내고, 이름과 핸드폰 번호를 적었다. 그렇게 공짜로 파란 자전거가 생겼다.

10:40 청계천을 따라 성수대교까지 페달을 밟았다. 볕이 좋아서 그런지, 자전거를 타러 온 사람이 꽤나 많았다. 공짜 자전거라 그런지 아무리 밟아도 속도가 잘 붙지 않았다.

11:15 성수대교를 하늘에 끼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 서울숲에 들어섰다. 커플과 가족 사이에 잠시 자전거를 세우고 잔디밭에 몸을 뉘었지만, 3시간 안에 자전거를 반납해야 하는지라 잠이 오지 않았다. 대신 생태숲으로 돌아가 꽃사슴을 구경했다. 구제역 때문에 먹이 주기 체험이 중지되어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듦과 동시에 배가 고팠다.

13:00 왔던 길을 달리며 자전거 대여소로 돌아갔다. 신분증을 돌려받으며 사무실에 들여놓은 정수기가 눈에 띄었고, 옆 화장실에 가는 척하다가 물을 마셨다. 작은 종이컵에 담긴 물에서는 단술 맛이 났다.

13:40 파묻힌 갈비뼈가 드러나지는 않을까? 말도 안 되는 착각이 들 정도로 배가 고팠다. 가장 크고 가까운 왕십리 이마트로 갔다. ‘부담 없이 맛있게 드세요’라는 문구를 보고 고기 만두, 냉면, 과일 스무디, 생두부와 과자 등을 마음껏 먹었다. 민망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15:00 광화문 역에서 내려 루이 비통 전시회를 둘러봤다. 예약을 하지 않았지만 5분 정도 기다리니 입장이 바로 가능했다. 현장에서는 루이 비통 장인이 작은 트렁크인 ‘쁘디 말’을 직접 만들고 있었다. 우리 할머니의 언니뻘은 되어 보였다.

16:30 전시장에서 우연히 친구를 마주쳤다. 돈의 ㄷ자도 꺼내지 않았는데 얼굴에 안돼 보였는지, 그녀가 선뜻 커피를 사주겠다고 했다. 테라로사 커피에서 얻어 먹는 아이스 드립 아메리카노는 눈물 나게 끝내줬다.

17:45 교보문고 책꽂이에 기대어 “엄마의 살림”을 읽었다. 직접 기른 나물로 차리는 “킨포크”식 밥상과 시골살이를 담은 책. ‘냉이 넣고 끓인 된장국에 엉겅퀴와 비름나물 무침’은 읽기만 해도 침이 고였다. 마음만 살찌우고 나왔다.

20:30 허기를 달래려고 야경을 찾았다. 뚝섬 자벌레 1층에서 열리는 “써주세요” 전시를 보고 지상으로 내려오니 젊은 친구들이 모여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오늘 이 자리에서 급하게 결성한 KICA라고 해요!” 패기에 웃음이 터졌다. 남자 둘이 서로를 마주 보고 노래를 하니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22:30 집에 오자마자 월드콘을 뜯어 먹었다. 역시 돈 없이는 처절하게 배고픈 하루였다. 다음에는 간단한 간식거리나 도시락을 챙겨 남산에 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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