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객실을 고를 때 좋아하는 취향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에서도 큰 창문이 달려 있는 욕실에 대한 집착이 크다(자연 채광의 자연스러운 빛 때문, 물론 좋은 매트리스와 촉감이 좋은 거위털 이불은 기본으로 하고.) 이런 이유로 파크하얏트의 디럭스룸에서 맞닥뜨린, 욕실 한 면이 통유리창으로 되어 있는 구조는 나를 단번에 매료시켰다. 욕조에 푹 몸을 담그고 삼성동의 빽빽한 빌딩 정글을 내려다볼 때는 어떤 영화 속 여주인공 같은 기분도 들었다. 함께 하룻밤을 묵은 친구는 한밤중에 커튼도 내리지 않은 상태에서 샤워를 해댔는데, 불 켜진 다른 빌딩에서 누가 볼 수 있을 것만 같아 내가 다 조마조마했다. "야, 어차피 내가 누군지 아무도 못 알아봐." 그녀의 무심한 말이 물론 맞지만, 나는 한낮에 반신욕을 하면서도 처음에는 연신 커튼을 올렸다 내렸다 했다. 물론 마지막엔 커튼을 다 올리고 반신욕을 즐겼는데, 일상에서는 맛볼 수 없는 짜릿함이 있었다. 투숙하는 첫날 이른 저녁에는 팀버하우스를 골랐다. 오후 6시부터 8시 반까지 3만 8000원을 내면 사케나 맥주, 와인을 무제한 마실 수 있는 해피아워가 있기 때문이다. 5만원 하는 사시미를 빼고는 연어 타다키나 해삼 내장 젓갈을 올린 흰살 생선 등의 메뉴 가격이 대부분 1만원에서 1만5000원대라 더 만족스럽다. 해피아워라 해도 전혀 호텔 바 같지 않은 가격이었다. 팀버하우스에서 기분 좋게 술을 마신 뒤에는 24층에 있는 로비 라운지에서 2차를 했다. 얼마 전부터 새 칵테일 메뉴로 올라온 스트로베리 막퀴리와 블러디 김치를 마셔보고 싶었다. 다퀴리에 들어가는 럼 대신 막걸리를 넣은 스트로베리 막퀴리는 달달하지만 맛의 균형이 좋았고, 블러디 김치는 생각보다 김치 맛이 강하게 나서 좀 부담스러웠다. 기본적인 블러드메리 재료에 김치주스와 고추장이 들어갔다는데 아무래도 고추장이 잘 어울리지 않는 듯했다. 가져온 와인 반 병을 객실에서 마저 마시며 보낸 파크하얏트의 하룻밤은 여자들의 술 파티로 끝났지만, 우리끼리 로맨틱할 일이 없는 호텔 방에서 가장 기분 좋게 만들어준 친구는 역시 술이었다. 로비 옆에 이어진 투명유리의 수영장은 끝내 이용하지 않았고(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신경 쓰인다), 조식이 괜찮기로 소문난 코너스톤에서 아침을 먹은 후에는 국화축제가 한창인 코엑스 대로를 끝까지 걸으며 산책했다. 그리고 다시 호텔로 돌아올 때 객실 창문을 계속 올려다보며 안이 보이는지 안 보이는지 체크했다. 생각보다 잘 보이는 것 같았다! (이 호텔 은근 스릴감 준다.) 하지만 파크하얏트에 다음번에 투숙하게 되어도 커튼은 치지 않을 것 같다. 도심 정글 속 타잔이 된 기분이 꽤 괜찮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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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가장 비싼 6성급 호텔. 아늑하고 고풍스러운 호텔 객실에 길들여져 있다면, 이곳은 조금 차갑고 인위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방에 들어서서 제일 처음으로 눈에 띄는 것은 건 포근한 침대가 아닌 고층 빌딩 사이에 우뚝 선 무역센터이기 때문. 호텔 전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 헬스장에 러닝머신을 뛰면서도, 각진 욕조에서 몸을 담그면서도 도심 풍경이 보인다. 영화 의 주인공 된 기분이랄까? 상대역은 스칼렛 요한슨이고, 러닝머신에 오른 당신은 해리스다. 야경 속엔 미래의 서울이 있고, 멋스럽게 담아낸 칵테일 또한 초현대적인 분위기를 이어 조성한다. 잘 보이고 싶은 이성이 있다면 지하에 위치한 라이브 재즈 바 더 팀버하우스로 그녀를 초대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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