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현지의 제철 식자재를 쓰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 사실은 당연한 것이다. 제주의 소문난 맛집들은 다 제주에서 나는 생선과 해산물과 식자재를 쓴다. 각재기라 불리는 생선으로 만든 각재기국이나 몸국, 자리물회 등 다른 나라 음식보다 더 이국적인 이름의 제주산 음식들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 그것들만 먹고 돌아다녀도 모자랄 제주 여행인데, 제주에서 프렌치 파인다이닝이라니.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가 제주산 식자재를 이용해 프렌치 요리를 선보인다고 했을 때, 과연 승산이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제주에서 머문 3박 4일 동안 가장 기억나는 음식 중에는 분명 각재기국과 함께 해비치호텔에서 먹은 코스 요리도 있었다. 그것도 꽤 생생하게.
지난 6월 말, 제주에 있는 호텔 중에는 처음으로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가 프렌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중심, 중앙’이라는 뜻을 지닌 밀리우(Milieu) 레스토랑이다. 이름처럼 이곳은 해비치호텔의 로비 중앙에 자리해 있다. 오픈 키친 형태로 바에 앉아 요리사들의 분주한 요리 작업을 볼 수도 있고, 대나무를 깎고 다듬어 새 둥지처럼 만든 개별 룸에서 좀 더 느긋하게 식사를 할 수도 있다. 셰프가 환영의 의미로 내는 아뮤즈 부쉬는 세 가지가 나왔는데, 화이트 와인으로 만든 젤리를 얹은 푸아그라에서 바젤 파우더를 뿌린 토마토의 강한 맛으로 입맛을 돋웠다. 물회에서 영감을 얻은 차가운 앙트레에는 제주산 광어와 애플망고, 경상도의 산초, 전라도의 유자가 섞였고, 따뜻한 전채요리로는 염소 치즈 크림과 블루베리, 로즈메리 향이 어우러진 구운 야채가 나왔다. 메인 요리는 육류와 생선 중 선택할 수 있는데, 베이컨 폼을 올린 농어요리나 1등급 한우 안심 스테이크가 나온다. 디저트는 제주 구좌읍에서 직접 재배하는 블루베리로 만든 타르트와 요거트 소르베. 이쯤 되면 누구나 셰프가 궁금해질 테다. 밀리우의 메인 셰프는 윤화영 씨다. 프랑스 국립고등조리학교(ESCF)를 수석 졸업했고, 알랑 뒤카스의 셰프 장 프랑수아 피에주, 조엘 로뷔숑의 오른팔이었던 에릭 브리파 밑에서 경험을 쌓은 수재다. 파리에서의 12년 셰프 생활을 마치고 지금은 부산에서 메르씨엘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다양한 제주의 식자재 중에서도 애플망고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다. 도매가가 2만원이나 하는 고급 식자재이지만 제주산 애플망고는 전 세계적으로도 최고에 든다고 했다. 그가 선보이는 밀리우의 프렌치 다이닝은 결론부터 말하면, 기대 이상으로 유혹적이다. 흙돼지도, 회도 매 끼니 먹을 수는 없는 법. 뭔가 특별한 제주의 미식 코스를 기억에 남기고 싶다면, 또는 허니문의 근사한 저녁을 위한다면 밀리우가 훌륭한 제안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서울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합리적인 가격대도 한몫 거든다. 오프닝 특선 6코스 디너는 8만9000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