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담으로 이어온 10년의 연애
K를 처음 알게 된 건 어느 게이 형의 개인 웹사이트에서였다. 벡(Beck)의 ‘Lost Cause’가 발매됐고, 나는 그 뮤직 비디오를 그곳 게시판에 공유했는데 K가 자신도 벡의 팬이라며 내게 댓글을 달면서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명동성당에서 첫 데이트를 하게 됐고 그날 밤 그의 작업실에서 (희미한 기억으론) 최소 30 분의 키스를 하면서 연애를 시작했다. 연애 10년 동안 내내 같이 살았다. 그 사이에 둘 다 학교도 졸업했고, 나는 군대도 다녀왔다. 연애 초반, 술과 밖을 좋아하는 나는 집 안과 둘만의 시간을 소중히 하는 그와 자주 다투었다. K와의 연애가 가장 절절했던 순간은 내가 뒤늦은 입대를 하면서였다. 21세기의 연인들 중 K와 나만큼 필담으로 연애의 긴장을 유지해나간 커플은 아마 찾기 어려울 것이다. 정확히 연애 10년 차가 되던 해 K 는 미국으로 유학을 결정했다. 2년 동안 군대 간 나를 얌전히(!) 기다렸던 것에 대한 복수라도 하듯 오랫동안 미뤄온 공부를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 함께 살던 집을 정리하고 지난 10년간 쌓인 집 계약서와 여행 사진들, 옷가지들 앞에서 흡사 나는 계약 이별을 하는 듯한 심정이었다. 요즘은 디지털 신호로 K를 만난다. 어린 시절
본 도라에몽에서나 나왔을 법한 K와의 화상 통화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적당히 권태롭고 이상하리만치 안전하다. 우리의 10년의 연애가 그랬듯.─김현우, 32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