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붉은 고래(大漁海棠) >는 작품 설정은 중국 감독이, 캐릭터의 애니메이션 전반은 한국 스튜디오가, 음악은 일본 스튜디오가 맡은 한중일 합작 애니메이션이다. 시사회에 참석한 에디터는, 관람하는 내내 감탄하느라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구멍이 난 하늘 사이로 격렬하게 쏟아지는 폭우, 비처럼 흩날리는 해당화와 허공을 헤엄치듯 나는 고래 곤까지. 장면 하나하나가 황홀하고 웅장하기 이를 데 없었다. 캐릭터를 움직여 마법 같은 움직임을 주고, 마치 실제 장면처럼 박진감 넘치는 자연물을 표현한 제작사가 바로 스튜디오 미르다. 중국 B&T 스튜디오가 전반적인 줄거리와 캐릭터를 정하면, 스튜디오 미르가 이들에게 움직임을 줘 2시간 분량의 애니메이션을 완성한 셈이다. 어떻게 이런 작품을 만들었는지, 내내 궁금했다. 그래서 찾아가 물었다. 집요한 질문공세를 흔쾌히 받아준 스튜디오 미르의 이승욱 이사(이하 욱), 그리고 한영자 부장(이하 영)과의 인터뷰.
작품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중국 B&T 스튜디오에서 합작 제안을 하면서 보낸 5분 동안의 파일럿 영상 때문이라고 들었다. 그것을 보고 작품이 마음에 들어 함께 일하게 되었다고 했는데, 어느 부분이었나?
(욱) 춘이 화분과 우산을 들고 집을 몰래 나가 배를 타고 영매를 만나러 가는 장면이 있다. 자세히 보면 굉장히 아트워크의 퀄리티가 뛰어나다. 많은 사람들이 그 부분을 보고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을 떠올릴 것이다.
(영) 장면도 그렇지만 전체적인 작품의 전체 분위기나 콘셉트, 톤이 굉장히 좋았다.
분위기나 작풍이 상당히 독특하고 주술적이다. 캐릭터나 배경 설정에 관여한 부분이 있나?
(욱) 연기를 표현하는 부분, 그러니까 영화에서는 연기자가 하는 역할을 애니메이션에서는 등장인물뿐만 아니라 자연물, 배경이 함께 맡는다. 다양한 캐릭터들의 연기를 움직이는 그림으로 표현하는 부분은 우리가 다 했다고 보면 된다. 각 등장인물의 디자인과 컨셉트에 대한 설정은 이미 우리 측에 제안이 들어왔을 때 B&T 스튜디오가 완성한 상태였다. 설정과 3~5년 걸려 만든 5분 남짓한 영상을 바탕으로 우리가 2년 만에 이 영화를 만들었다.
다른 스튜디오가 캐릭터를 설정하고 미르는 메인 프로덕션(캐릭터에게 움직임을 부여하는 작업)에만 관여를 했다는 얘긴데, 보통 이런 식으로 작업을 해왔나?
(욱) 스튜디오 미르는 이제까지 미국과만 합작을 해왔다. 캐릭터와 환경 설정부터 줄거리나 이후의 그래픽까지 모든 작업을 맡아 하는 것이 원칙이다.
(영) 그러나 이 작품은 중국 진출에 의미를 두기도 했고, 그림과 줄거리도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이례적으로 많은 부분을 타협하고 작업하게 되었다.
중국 스튜디오와 파트너십을 맺어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문화가 달라 의견조율이 힘들지 않았나?
(욱) 구체적인 결과, 작업물을 두고 얘기하기 때문에 갈 방향을 정하기가 어렵진 않았다. 다만 스튜디오 미르는 원래 미국과 합작을 주로 해온 회사다. 제스처나 감정 표현이 다른데, 그 포인트를 잡아내는 것이 관건이다. 고생은 많이 했지만, 잘 나왔다는 말을 들으니 감사하다.
고생을 했다니 말인데, < 나의 붉은 고래 >에서 표현하기 어려웠던 장면이나 부분이 있다면?
(욱) 연기보다는 자연물, 특히 물 표현이 힘들었다. 할아버지 나무가 커지는 장면도. 후반부에 세상이 물에 덮이는 장면은 일일히 손으로 그린 거다. 이제까지 해온 그 어떤 작품보다 물이 많이 나왔다.
(영) 물이 굉장히 표현하기 힘든 이유는, 정형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 몸에서 떨어지는 물, 고래에서 흐르는 물, 쏟아지는 물의 느낌이 다 다르기 때문에 굉장히 힘든 작업이다.
(욱) 물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아무도 설명하지 못하지만, 봤을 때 이상하면 모두가 안다. 물의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그 속에 의미도 담아야 하기 때문에 어려웠다.
물은 애니메이션의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하니 고생이 많았겠다. 그럼, 그 중 특히 애착이 가는 장면은?
(영) 마지막에 춘이 자신을 희생하는 장면이 있다. 할아버지 나무와, 할머니 봉황도 등장하는. 감정적으로도 중요한 부분인데, 거기서 해당화가 흩날리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욱) (한참 후에) 생각나는 신이 하나 있다. 추가 춘과 함께 땅끝으로 가면서 모닥불 옆에서 우는 장면. 얼굴이 보이지 않고 등만 보이는데, B&T 스튜디오에서 추의 감정을 등으로 표현해달라고 했다.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이걸 뭐 어떻게 해야 하나, 등 밖에 안 보이는데'라면서 (일동 웃음)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깊지 않은 초반이었기는 한데, 굉장히 많은 수정을 거친 장면이다.
- 그래서 결과는?
(욱) 보시는대로(웃음). 감독에게서는 "등으로 슬픔을 표현해야 한다"라는 지시 밖에는 오는 게 없어서, 참 어려웠다. 작업이 힘들었다기보다도, 고민이 많았던 장면이다. (끝내 자신의 마음을 밝히지 못하고 춘을 보며 눈물을 삼키는 추. 그의 어깨가 흔들리자 영화관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개인적으로, 고생한 보람이 있는 명장면이라고 평하고 싶다.)
- 만약 등장인물 중에 한 명을 지금 만나서 뒷이야기를 물어볼 수 있다면, 누굴 만나고 싶나?
(욱) 나는 너무 오래 작업을 해서 궁금한 뒷이야기가 없는 것 같다 (일동 웃음) 사람들은 추를 보고 싶어할 것 같다.
(영) 등장하는 시간은 짧았지만 강한 인상을 남겼던 영매다. 비약일지도 모르지만, 과거에 독립운동을 하는 운동가를 뒤에서 도와주는 사람같은 캐릭터다.
(욱) 멋진 캐릭터다.
- 마지막으로, < 나의 붉은 고래 >를 보는 관객들에게 한마디씩 부탁한다.
(영) 물(水)의 애니메이션을 맘껏 즐겨주기 바란다.
(욱) 아트웍과 애니메이션의 움직임이 훌륭한 작품이다. 작은 화면보다는 영화관에서 관람하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