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의 규모로나 슬픔의 깊이로나 최근 세월호보다 더 비극적인 참사는 없을 것이다. 세월호 사고가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영화에는 연출이 있고, 연출에는 의 가 담긴다. 그러므로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를 비교적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이 참사가 왜곡되길 바라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영화가 나오지 않기를 바랐던 이유다. 영화 "나쁜 나라"는 나 같은 소인배의 반발심보다는 영화로서 다시금 이 참사가 조명되길 원하는 다수의 갈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를 연출한 김진열 감독은 이 영화가 ‘죄책감’ 에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죄책감. 미안한 마음으로 제작된 "나쁜 나라"를 미리 본 뒤, 감독을 만났다.
글 김관(전 JTBC "뉴스룸" 사회부기자)
김관 영화 제작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
김진열 감독 다큐멘터리 제작을 수년간 해왔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경기도 안산에서 시민을 대상으로 미디어 관련 교육을 한 적이 있다. 공교롭게도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은 대부분 안산 시민들이지 않나. 내가 오가며 버스 안에서 마주친 학생들 가운데에도 희생자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뭔가 내가 할 게 없을까 고민했고, 마침 다큐 제작을 통해 이 참사를 기록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거절할 수 없었다.
김관 "나쁜 나라"는 참사 이후 진행된 다양한 일을 시기별로 정리하고 있다. 방대한 자료가 필요했을 것 같다. 영상은 어떻게 확보했나.
김진열 감독 세 명의 감독이 1년 넘게 세월호 관련 현장과 유가족들을 따라다니며 그 구석구석을 HD 카메라로 담았다. 그 외에도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그때그때 유가족들에게 요청했다. 그러면 그들이 휴대전화로 찍은 영상을 보내줬다. 무엇보다 유가족들의 동의를 얻어 기획된 것이기 때문에 일반 언론들이 함께할 수 없는 영역에서도 폭넓은 촬영과 취재가 가능했다.
김관 영화는 주로 유가족들이 정부나 정치권에 투쟁하는 과정을 담았다. 이유가 있나.
김진열 감독 세월호 참사는 작년 7–8월에 어느 정도 정리가 될 줄 알았다. 그래서 영화도 사고 이후에 삶을 이어가는 유가족들의 모습에 집중할 줄 알았는데,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이어졌다.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되고 통과되는 과정이 너무 험난하지 않았나. 국가가 마땅히 지원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깨지며 유가족들의 좌절감이 컸다. 거기에 주목했다. 참사를 당한 이들을 위해 법안을 만들어 통과시키는 일이 수많은 비난과 반대에 부딪히며 표류하는 게 충격이었다. 그만큼 유가족들은 더 괴로워야 했고, 싸워야만 했다. 그래서 여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유가족들의 거친 언행은 일부러 편집하지 않았다. 그게 현실이고 그것이 곧 분노였다. 강경한 행동에 대해선 유가족들 내부에서도 찬반 논란이 있었는데, 그런 내부 갈등도 그래서 담았다.
김관 정의화 국회의장이 유가족들에게 호통 치는 부분은 다시 봐도 충격적이다. 꽤 길게 삽입됐는데, 연출 의도가 분명히 담긴 것 같다.
김진열 감독 유가족들이 맨 바닥에서 숙식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국회는 열린 국회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유가족들이 항의하자 국회의장은 유가족들의 농성도 자신이 허락했기에 가능한 것이라며 생색 내듯 얘기한다. 그것은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는 한 정치인의 민낯이자 국가의 민낯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꽤 길게 영화에 포함시켰다.
김관 작업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있다면.
김진열 감독 유가족들이 법원 제출용 영상을 준비할 때 내가 한 파트를 만든 적이 있다. 배가 침몰하기 전 아이들이 찍은 사진이나 동영상을 받아서 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사진으로만 본 아이들의 음성을 처음 들을 때 뭐라 형용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다. 아이들의 음성이 며칠 동안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김관 나 역시 비슷한 작업을 했다. 뉴스에서 휴대폰 영상을 복원해서 매일 소개해야 했는데, 정말 힘들더라. 죽기 전에 남긴 영상은 물론, 휴대폰 안에 있던 모든 영상을 봐야 했는데, 그걸 하루에도 몇 번씩 돌려보는 일이 제일 괴로웠다.
김관 내레이션을 영화배우 문소리 씨가 맡았다. 배우에겐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다.
김진열 감독 원래 내레이션 없이 가려고 했다. 그런데 2시간이라는 상영 시간 동안 관객을 끌고 가기 위해서는 내레이션이 필요했다. 관객에게 친근한 목소리면 좋겠다고 판단했고, 문소리 씨를 맨 먼저 떠올렸다. 세월호 참사 당시 많은 영화인이 특별법 제정에 힘을 보탰는데 문소리 씨 역시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었다. 수차례 부탁 끝에 그녀가 허락했다. 세월호가 정치적 이슈로 비춰지는 기류 속에 이런 역할을 맡는 게 배우에게 부담스러운 작업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 문 씨에게 더더욱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