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그리고 무료로 열리는 전시공연 프로그램이라고 하기에는 그 수준이나 콘텐츠가 꽤 훌륭해서 자주 가게 된 문화역서울284. 2004년도까지는 실제 기차역으로 쓰였고, 그 후에는 원형복원공사를 거쳐 2011년부터 복합문화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곳을 좋아하는 이유 는 훌륭한 프로그램을 무료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이지만, 이 오래된 건물 자체가 지니고 있는 고유의 건축미와 아우라 때문이기도 하다. 전시를 관람하러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12개의 돌기둥이 세워져 있고 아치형으로 구성된 중앙홀은 정말 근사하다. 강강술래를 형상화한 천장의 스테인드글라스도 원래 있던 것처럼 잘 어울리고, 높고 탁 트인 천장의 높이는 늘 작품을 보는 영감을 자극한다. 전체 건물의 공간도 제법 크고 전시나 체험 공간으로 쓰이는 방들도 여러 개로 나뉘어 있어 둘러보는 재미도 있다. 그 중에서도 서양식 벽난로와 샹들리에가 이국적이기까지 한 귀빈실과 예전에 서울역 그릴로 쓰였던 레스토랑 공간은 특히 고풍스러움이 넘친다. 1920년대의 경성으로 돌아간 느낌이랄까. 어떤 전시가 들어와도 빨간 벨벳 커튼과 빈티지한 벽지, 육중하고 오래된 나무 문, 박달나무 바닥 등은 바꾸지 않아 옛 서울의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서울역은 일제 식민지시대에 일본인 스카모토 야스시 교수에 의해 설계됐다. 스위스 루체른 역을 모델로 만들어진, 서울에서는 몇 안 되는 근대문화유산이다. 어둠이 내려앉기 직전, 파랗게 변한 하늘 아래에서 가스등 같은 주황색 불빛을 내뿜는 서울역의 외관은 정말 운치 있다. 마치 차창 밖으로 유럽의 어느 도시를 지나고 있는 듯한 순간을 만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