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나간 딸이 집에 간다고 하면 엄마는 옛날처럼 다정하게 보리차를 끓여준다. 그래서인지 식사를 하러 밖에 나가서도 물맛을 유심히 본다. 가장 처음 먹는 물은, ‘우리 집에 잘 왔어’라는 인사 같기도 해서. 그런 의미에서 븟븟의 첫인상은 다정하다. 건물의 반 지하, 천장이 낮은 내부 공간에는 은은한 조명이 비추고 약도라지를 달인 물에서는 은근한 단맛이 난다.
븟븟은 시간을 들여 만든 음식을 내는 약선 요리 전문점이다. 고기를 한약재와 함께 수비드 방식으로 조리하는 것이 특징이다. 간장 같은 소스와 밑반찬도 직접 만드는데, 한쪽 벽면에는 숙성 중인 효소가 담긴 병도 보인다. ‘수-비드 돼지고기 수육’, ‘수-비드 닭 백숙’ 등을 메인으로 역시 수비드한 고기를 사용한 샐러드와 무침, 면 요리 메뉴가 있다. 이 중 추천 메뉴는 이북식 찜닭을 떠오르게 하는, 78시간 동안 수비드한 닭백숙이다. 잘게 썬 진피가 고기 위에 장식으로 올라가고 이와 함께 직접 담근 장아찌와 동치미, 그리고 세 가지 맛의 소금이 곁들여 나온다. 젤리처럼 몽글몽글한 식감의 껍질과 기름기 없이 담백한 속살의 맛이 만족스럽다. 닭의 잡내는 물론 한약재의 향도 거의 없다. 고기는 취향에 따라 매운 소금, 진피 소금, 레몬 소금에 찍어 먹거나 깻잎 장아찌에 싸서 먹으면 된다. 장아찌는 백숙의 맛을 해치지 않을 정도로 짜고 입맛을 돋우기에 적당하다. 백숙을 먹다 보니 함께 판매하는 황금보리 소주나 탁주인 우곡주와 곁들이면 좋겠다는 생각도 절로 든다.
여기에 메뉴를 하나 더 추가한다면, ‘궁중 김치메밀국수’가 있다. 비빔국수처럼 생긴 이 메뉴는 이곳에서 개발한 별미다. 직접 담근 닭김치(백김치에 삶아서 잘게 찢은 닭살을 넣고 숙성시킨 김치)에 향이 좋은 취나물, 부추 등과 함께 메밀면을 넣고 올리브오일로 버무렸다. 그리고 호두와 오렌지가 토핑처럼 올라갔는데, 마치 한국식 샐러드 파스타를 먹는 기분이다. 븟븟의 맛은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담백하다. 어른을 모시는 식사 자리에도 친구들끼리의 오붓한 술자리에도 좋다. 누가 더 자극적인지, 누가 더 빨간지 경쟁하는 것 같은 요즘 한국 음식점들 사이에서 단정한 이곳의 맛이 더욱 오래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