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가장 큰 한약재 시장인 약령시장과 수산물과 청과물 시장으로 유명한 청량리 종합시장이 모여 있는 청량리역 부근. 상인도, 고객도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청과물을 파는 청량리 시장 안에 전혀 상상치 못한 공간이 숨어 있다. 찾기는 쉽지 않다. 빼곡한 파라솔 위를 올려다보며 걷다 보면 오래된 2층짜리 건물이 하나 나타난다. 발랄한 주황색 페인트로 쓰여진 글자가 있다. 바로 ‘상생장’이다.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웃음이 터져나오게 하는 문구가 먼저 손님을 맞는다. ‘하여튼 좋은덴 지혼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어메이징 브루어리의 수제맥주, 쌀국수, 장어덮밥, 미트볼, 생과일 주스 등을 파는 작은 가게 7개가 모여있는 푸드코트가 나온다. 원하는 음식을 한 곳의 카운터에서 주문하고, 음식을 받아가는 식이다. 음식을 받아들고 맞은 편의 홀에 가져가서 먹으면 된다.
그런데, 이 맞은 편에 있는 홀이 정말 근사하다. 골조가 드러난 높은 천정, 80년대 학교 과학실에서 쓰던 긴 공동 탁자, 곳곳에 걸린 미술작품 등, 청량리 시장에서는 찾기 힘든 패기와 젊음, 언더그라운드적인 분위기가 가득하다. 멀리 북한산이 보이는 옥상에서는 파티와 캠핑도 열린다. 오래된 시장 안의 변신을 일궈낸 사람은 나영규 대표. 서울을 중심으로 경기도와 제주도까지 도심 속 캠핑식당 ‘아웃도어 키친’을 운영하고 있는 이다. 청과물 시장을 지나다 우연히 발견한 창고를 3개월 동안 시장 상인들을 설득시켜, 먹거리와 전시와 공연까지 어우러지는 지금의 상생장으로 탈바꿈시켰다.
겉보기에 꽤 멋진 공간이지만, 트렌드를 위한 곳과는 거리가 멀다. 그보다는 창업을 원하는 젊은이들을 위해 기획과 메뉴 개발, 컨설팅을 해주는 ‘창업학교’의 한 형태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곳이다. 또 시장에서 파는 싸고 질 좋은 재료를 이용해 요리 대회나 수업을 병행하며 시장 상인들과도 시너지를 높이고자 하는 곳이다. 이런 ‘상생’을 꿈꾸는 곳이다.
일반 사람들에게는 해가 질 무렵 찾아와 맥주 한잔을 마시며 시장 속 딴 세상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추천한다. 주중에는 오후 4시부터, 주말에는 점심 시간부터 여는데, 음식만 보고 찾아오기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쌀국수 면으로 만드는 멸치쌀국시와 왕새우탕면을 먹어봤지만, 육수도 제대로 내지 못한 음식이었다. 가벼운 안주와 맥주를 마시는 이색 장소로 더 어울린다. 특히 이곳의 탁 트인 옥상은 봄밤이 어서 오도록 기다려지게 만드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