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을 걷다 만나는 하얀색 외관의 건물, 무엇을 하는 곳인지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아 궁금해지는 곳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블랭코브, 오라리 등 디자이너 의류가 얌전히 진열된 편집숍이 나온다. 손님을 맞는 인사 외엔 별다른 안내가 없지만, 한쪽에 난 좁은 계단을 찾아 올라가 본다. 현대적인 외관과는 대비되게 여기저기 긁힘이 있고 낡아서 정감 있는 나무 계단이다. 2층에 다다르면 좁은 공간에 옷, 디자인 소품 진열대와 함께 카페 카운터가 자리해 있다.
‘대체 어디서 마시란 얘기지?’ 하는 생각이 들 때쯤 계산대 반대편으로 걸음을 옮기니 오래된 주택에서나 볼 수 있는 녹슨 철제 계단이 보인다. 손님들을 위한 거라고는 상상되지 않는 완전한 ‘가정용’ 옥상 계단이다. 그 위에는 뭐가 있는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사택을 침입하는 기분이지만, 아무도 제지하는 분위기는 아니니 주문한 음료를 받아들고 올라간다. 한 계단씩 오르며 시야가 수평으로 조금씩 넓어지는데, 어느 순간 눈 앞에 푸른 산봉우리가 떠 있다.
‘우리 집에도 이런 옥상이 있었으면 좋겠다.’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다. 널찍한 테이블이 있는 것도, 특별히 꾸민 흔적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아늑한 멋이 있다. 거창하지 않아서 오히려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친절하고 스타일 멋진 직원들이 있다는 점도 한 몫 거든다. 생맥주나 마가리타가 더 어울릴 듯한 편안하고 젊은 분위기의 옥상이지만, 이곳은 바가 아닌 엄연한 의류숍이다. 그러니 북한산을 바라보며 마시는 시원한 커피로 만족해야한다. 평범한 커피지만 신기하게 기분 좋아지는 한 잔이니 괜찮다. 맘구석 어딘가에 뾰족함이 느껴지는 날이면 슬로우스테디클럽의 루프톱에 5분만 앉아 있어 보라. ‘천천히, 느리게’라는 이곳의 이름처럼, 술 없이도 충분히 느긋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