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어두운 겨울을 지내야 하는 덴마크에서는 후거(Hygge)라는 콘셉트가 생활의 중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휴식과 안락함을 통해 삶을 따뜻하게 하는 지혜다. 서울에도 이러한 덴마크 미학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곳이 있는데, 바로 후거 벤이다. 홍대 ‘주차장 길’의 한 골목으로 들어가면 3층 단독건물 외관에 씌어진 벤(Ven)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계단을 올라 2층의 레스토랑으로 들어서면, 얕은 눈이 쌓인 듯한 모습의 하얀 벽돌 벽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거친 목조 천장과 서리가 낀 듯한 디자인의 유리창, 그리고 투박한 테이블에 놓여진 촛불과 알코올램프가 폭풍전야의 덴마크 시골집에 온 듯한 아늑함을 준다.
메뉴에서는 덴마크인의 일상식을 찾아볼 수 있다. 9가지의 오픈 샌드위치로 구성된 스뫼레 브레드(Smørre Brød)는 직접 만든 호밀빵 위에 훈제 연어나 돼지고기 리예뜨, 소간 파테, 비프 텐더로인, 새우와 아보카도 외 각기 다른 재료를 올린 것이다. 매일 구성이 달라지는 스페셜 트레이(오늘의 수프, 반숙 달걀, 호밀빵, 하몽 슬라이스, 랑곤베리 드레싱의 샐러드, 오늘의 치즈, 돼지고기 리예뜨, 오늘의 디저트)는 흔히 ‘덴마크 다이어트’라 불리는 식단과 비슷한 건강한 덴마크 일상식이다. 합리적인 가격의 런치 메뉴도 준비되어 있는데, 그 중 후거 치킨은 고르곤졸라 크림소스로 요리한 버섯과 겉이 바삭한 구운 닭고기가 더치 베이비 팬케이크에 올려진 요리다. 조금은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후거 벤 버전의 더치 팬케이크는 보슬보슬한 식감에 적당한 단맛과 짠맛의 조화로 치킨과 잘 어우러진다. 단, 북미식에 길들여진 사람이라면 입맛에 따라 소금과 후추를 추가해야 할 수도 있다. 타임아웃 에디터의 추천 메뉴는 송이, 표고 등 4가지 버섯과 하몽 슬라이스, 그리고 수란이 어우러진 스팀 머쉬룸이다. 감칠맛이 좋은 얇게 썬 하몽과 쫄깃한 버섯, 그리고 부드러운 수란을 한 입에 넣으면 세상에 이보다 더 위로가 되는 ‘컴포트 푸드’는 없을 것 같다. 매일 아침식사로 먹었으면 하는, 입맛을 돋우며 적당히 친숙한 맛이다. 후거 벤은 실험적인 맥주의 애호가라면 만족할 만한 생맥주와 병맥주도 갖추고 있다(1층에 입구가 다른 바를 따로 두고 있다). 대부분이 덴마크의 대표 크래프트 맥주인 투 올(To Øl)과 미켈러(Mikkeller)다. 현재 드래프트로 제공되는 한국의 더 부스 브루잉과 투 올의 합작품, 윗 마이 엑스(Wit My Ex)는 홉의 풍미가 가득하고 밀과 오렌지, 꿀 향이 옅게 느껴지는 밀맥주다. 꽤나 쌉쌀한 맛이 두드러지는 피니쉬로 후거 치킨의 진한 맛과 잘 어울린다.
3층에는 흰색과 청록색의 조화로 미니멀하게 장식된 웨이팅 라운지와 프라이빗 파티 공간이 있다. 홍대에 이렇게 여유로운 곳이 있다는 것이 더욱 반갑고 신기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메뉴뿐 아니라 덴마크의 식문화에 대해서도 설명을 곁들이는 친절한 서비스 또한 경험하고 나니, 후거 벤은 북적이는 홍대 한가운데에서 그 이름을 통해 약속한 모든 것을 제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멋 부리지 않은 자연스러움에서 오는 안락함(Hygge), 그리고 덴마크 특유의 정감(Ven)이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손꼽히는 덴마크의 비밀이 이곳 후거 벤을 통해 서울 사람들의 일상으로 성큼 다가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