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의 차가운 ‘면 요리’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면 요리를 모았다. 여섯 명이 꼽은 ‘면’심으로 여름 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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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밀면의 ‘물밀면’
강남밀면의 ‘물밀면’
김도훈(허핑턴포스트코리아 편집장)
서울에 갓 올라온 시절 먹은 최악의 음식은 평양냉면이었다. 나는 그걸 반 그릇 정도 먹고 말했던 것 같다. “고기 국물 닦은 걸레 빤 물 같아.” 물론 지금 나는 평양냉면을 정말이지 사랑한다. 다만, 여전히 나에게 궁극의 차가운 면이란 고향 부산의 밀면이다. 어린 시절부터 엄마는 밥이 하기 싫은 토요일이면 1만원을 쥐어주시며 “요 앞에 밀면집 가서 세 그릇만 포장해온나” 라고 하셨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토요일 점심만 되면 절로 돼지고기 육수에 매운 양념을 푼 밀면을 머릿속으로 떠올린다. 아쉽게도 서울에서 제대로 된 밀면을 먹을 수 있는 집은 거의 없다. 그래도 강남역의 강남밀면은 어느 정도 근사하게 어머니가 좋아하던 그 맛을 재현해낸다. 강남역과 밀면은 꽤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긴 하다만.
고성 막국수의 ‘동치미 막국수’
고성 막국수의 ‘동치미 막국수’
배순탁(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서울 시내부터 경기도 일대까지 평양냉면을 파는 곳은 대부분 가봤을 정도로 냉면 마니아지만, 막국수집을 추천하고 싶다. 평양냉면은 하도 많이들 찾으니 여름에는 오히려 다른 스타일의 면 요리를 찾는다. 평양냉면은 깔끔하지만 베이스 자체가 고기 육수이기 때문에 국물이 묵직한 데 비해, 막국수는 동치미 국물이라 더욱 깔끔한 맛을 느낄 수 있다. 고성 막국수는 2000년대 중반부터 다니기 시작했는데, 화곡동에 있는 회사에 다닐 적 점심시간에 선배가 데려갔던 곳이다. 사실 남들에게 알려주기 싫을 정도다. 생소한 위치임에도 사람들이 많아서 오래 기다려야 한다. 막국수면의 메밀 함량이 높아 뚝뚝 끊어지는데 이 식감이 일품이다. 더군다나 메밀면 자체의 향이 좋고. 동치미가 시원하고 단맛이 덜하다. 사이다 넣은 시큼달달한 동치미와는 차원이 다른 동치미 막국수라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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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면옥의 '물냉면'
평양면옥의 '물냉면'
조지영(스타일H 매거진 마케터)
서울 중구는 냉면집의 메이저리그다. 전쟁 이후 인근 동대문 시장에 실향민들이 몰리면서 자연스럽게 냉면집들이 주변에 들어섰다는 것이 정설이다. 평양면옥은 평양냉면집 중 가장 마니아층이 두텁다. 우래옥이 육수를 내세운다면 평양면옥은 면발로 인정받는다. 신선한 메밀을 직접 도정해서 쓰는데 대략 8:2 비율로 메밀과 전분을 섞는다. 함량은 계절에 따라 조금씩 변화를 준다. 필동면옥보다 양이 넉넉하다. 냉면도 그렇지만 만두도 이 집이 더 크다. 점심시간이면 넥타이 부대와 냉면 마니아, 관광객이 뒤섞여 발 디딜 틈 없이 붐비기 때문에 타이밍을 잘 맞춰서 가야 한다. 7월과 8월을 피해서 가는 것도 이 집 냉면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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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회관의 '콩국수'
진주회관의 '콩국수'
정기영(타이드스퀘어 이사)
1962년 진주에서 시작한 이 콩국수는 1965년 서울로 올라왔다. 당시 가격은 90원. 지금은 9500원까지 올랐지만 푹푹 찌는 여름이면 시원하고 걸쭉한 콩국]수 한 그릇을 찾아온 손님들 줄이 끝없이 이어진다. 강원도 토종콩을 갈아 만든 걸쭉한 국물과 콩가루를 섞어 만든 굵고 차진 면발은 심플하지만 완벽한 하모니를 보여준다. 콩국 특유의 비린 맛을 싫어하는 사람도 이곳 콩국수를 먹고 나면 생각이 달라진다. 고기가 귀하던 시절, '밭에서 나는 고기'로 국물을 낸 콩국수 한 그릇은 우리 민족의 보양식이었다. 미식가로 소문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도 여름이면 이 국수를 즐겨 찾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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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수 메밀의 ‘메밀 정식’
청수 메밀의 ‘메밀 정식’
오상진(방송인)
대학 시절부터 2년 전까지 10여 년 동안 여의도에 살았다. 누구에게는 삭막한 일터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불꽃과 벚꽃으로 상징되는 데이트 코스일 수도 있지만 의외로 엄청난 내공의 음식점들이 자리한 ‘맛집 천국’이라는 건 잘 모를 거다. 그중에서도 ‘청수 메밀’은 여름철 차가운 면이 당길 때 꼭 찾게 되는 곳. 여의도 넥타이 부대에게는 잘 알려진 곳인데 악명 높은 긴 줄로도 유명하다. 고급스럽고 깔끔한 분위기가 아닌 낮은 문턱의 맛있는 판 메밀 집이다. 양도 많고, 사이드 메뉴인 만두도 맛있다. 분식집 수준의 밑반찬과 서비스에 실망하지 말기를. 금융계와 대기업 본사가 즐비한 고소득자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이겨낸 맛집이니 전국구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을까? 다리 너머 보이는 여의도, 지금 당장 가서 젓가락을 들고 싶다.
연경의 '해물냉면'
연경의 '해물냉면'
유정인(셰프)
일본 유학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해물냉면. 한국의 여름 냉면과는 달리, 일본에선 히야시츄카(일본식 중국냉면)라는 차가운 중국냉면을 많이 먹곤 했다. 요리 학교에 다니던 시절, 습한 여름에 지친 체력을 북돋워준 면 음식이다. 상콤달콤한 육수에 차갑게 식힌 쫄깃한 면발, 사태 고기나 해물이 듬뿍 올라가고, 채 썬 오이와 야채, 고소한 땅콩 소스가 어우러진 냉면을 마주 하노라면 더운 여름이 싫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와 히야시츄카를 그리워하던 중, 가장 비슷한 맛을 내는 연경을 발견했다. 일본에서 먹던 냉면과 이름은 다르지만, '해물냉면'으로 그때의 맛과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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