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쌀을 오래 끓인 식감이 부드럽다기보다는 물컹하게 느껴져 웬만큼 속병을 앓지 않고선 죽을 잘 먹지 않는다. 그런 에디터가 매일 매일 찾고 싶은 죽집이 생겼다. 바로 망원동 한적한 길가에 자리한 스믓스다.
이곳의 메뉴는 한식과 양식, 뜨거운 죽과 차가운 죽을 넘나드는 맛깔난 ‘요리죽’으로 구성됐다. 다양한 맛의 조합과 식감을 한 그릇에 느낄 수 있어 미각이 한시도 무료할 틈이 없는 ‘요리’다. “조선 시대에는 대중적으로 즐겨먹는 죽 종류가 상당히 다양했어요. 현대로 오면서 종류가 줄고, 개인 입맛에 맞는 죽을 찾아 먹기 힘들게 됐죠.” 외식업계 베테랑이었던 박동욱 대표는 세계 각지의 유동식을 탐사하고, 정형화되지 않은 죽 메뉴를 개발해 스믓스를 열었다. 식당 문을 열기까진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기본적인 것에서 비롯한 탄탄함은 음식과 공간 모두에서 드러난다.
매운 소스에 버무린 바삭한 새우튀김을 올린 매운 새우 죽, 두반장과 굴 소스에 볶은 가지를 올린 가지볶음죽, 간장 소스로 맛을 낸 등심과 채소를 올린 소고기 등심죽 등, 약 10가지의 메뉴는 가히 화려하다. 모두, 우리에게 익숙한 죽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 “위에서 가장 흡수가 잘 되는 형태”면서도, 개성과 품격이 두드러진다. 그중 된장으로 요리한 맥적 구이를 올린 보리죽은 각 재료가 따로 또 같이 훌륭한 풍미를 자랑한다. 단맛과 짠맛이 적당한 부추 무침도 함께 올려 한 그릇의 만찬을 완성했다. 가격은 1만원. 비교하자면, 직장가의 ‘점심 갈비 특선’ 같은 메뉴보다 몇 배는 더 풍성하고, 입에 쫙 감기는 감칠맛이 일품이다. 섞지 않고 각 재료를 한입에 맛보는 것이 좋다고. 무나물과 장아찌 등, 곁들여 나오는 반찬은 소박하면서도 그 맛이 수준급이다. 웬만한 호텔 한식당에 견주어도 손색없는 솜씨가 인상적이다. 게다가, 입가심을 위한 푸딩까지 정성스레 쟁반에 올렸다. 단돈 1만 원에 만끽하는 ‘제대로 된 대접’이다.
뜨거운 요리 죽 외에도 차가운 ‘서양죽’이 여름 특선으로 2가지 준비돼 있다. 이름만으로도 궁금해지는 서양죽 메뉴는 비트와 감자를 베이스로 만든 핑크 비트 서양죽과 블루베리, 요구르트로 만든 블루베리 서양죽이다. 블루베리 죽 안에는 코코넛 밀크에 졸인 쫄깃한 찰흑미가 들어 있다. 마냥 디저트 같을 거라 예상했지만, 상상보다 훨씬 맛깔스럽고, 단맛이 강하지 않다. 서양 죽은 커다란 아보카도 조각과 크림치즈가 올려진 샐러드와 빵이 함께 나온다. 풍성한 구성이 1만 원을 내기엔 미안해질 정도다.
스믓스에서 보내는 시간이 즐거운 또 하나의 이유는 공간에 있다. 한 채의 주택 전체를 개조한 공간은 과함 없이 개성 있는 요소로 채워져 있다. 광목천에 수를 놓아 완성한 작은 커튼이 창문 한쪽을 단아하게 장식하고, 단순한 나무 탁자 위로는 강렬한 색채의 꽃들로 채운 화병이 놓여 있다. 자연스럽고 멋스러우며, 작은 요소의 어울림이 돋보이는 인테리어는 이 집의 음식과 똑 닮아 있다. ‘모던 죽집’이라는 콘셉트는 서울에서 아직 생소한 것이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적당히 익숙하고 또한 기막히게 신선하다. 스믓스는 그래서, 바로 오늘 가봐야 할 식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