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촐로(Cucciolo), 마렘마(Maremma), 볼피노(Volpino). 근 2년 간 이탤리언 음식으로 서울 레스토랑 신에서 가장 많이 언급됐던(다르게 말하면, 예약하기 어려운 곳으로 꼽히는) 곳들, 그중 셋은 김지운 셰프의 프로젝트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하나씩 문 연 세 곳의 식당은, 순서대로 진화했다기 보다는 젊은 오너 셰프의 스타일을 변주해 완성한 시리즈에 가깝다. 쿠촐로는 오스테리아(Osteria) 콘셉트로 작은 공간에 꾸민 이탈리아식 선술집(밤에만 연다), 마렘마는 밝은 분위기의 트라토리아(Trattoria)로 가정식에 집중한다. 가장 마지막으로 선보인 볼피노는 조금 더 격식을 차린 리스토란테(Ristorante). 하지만 깍쟁이 같은 곳은 아니다. 소박한 플레이팅으로 내는 음식은 오히려 털털하고 멋 부리지 않았다. 격식을 차린 것은, 그보다는 셰프가 음식을 내는 마음가짐이다. 수요에 따라 매일 혹은 이틀에 한 번 꼴로 직접 생면을 만들고, 간결하면서도 짜임새 있게 재료를 조합해 낸다. 맛볼 수 있는 파스타 종류는 10가지가 넘는데, 재료와 식감을 고려해 면 종류에도 차이를 둔다. 고등어와 그린 올리브, 케이퍼, 방울토마토, 바질이 들어간 세몰리나 키타라(Semolina Chitarra)에는 거친 세몰리나(Semolina) 밀가루와 달걀을 혼합해 만든 면을 넣었다. 기타(‘키타라’는 이탈리아어로 ‘기타’라는 뜻)를 닮은 도구를 이용해 만드는 스파게티 알라 키타라(Spaghetti alla chitarra) 생면으로, 올리브 오일 베이스에 어울리는 매끈하고 부드러운 식감이 인상적이다. 새우와 갑오징어(조각 낸 후 덩어리로 뭉쳐 소시지처럼 만들었다), 페코리노 치즈와 딜을 넣은 크리미한 파스타는 차진 식감의 오징어 먹물 펜네가 꼼꼼한 시너지를 완성한다. 한입에도 기교를 제한하며 만들어낸 복합적인 풍미가 드러나 파스타 면에도 자연스레 미각이 머문다. 화려함을 배제하고, 간소한 재료가 따로 또 같이 잠재력을 발휘하게 한 것은 파스타 외 메뉴도 마찬가지다. 전채요리 중 트러플드 아란치니(Truffled Arancini)는 송로버섯을 넣은 리소토를 동그랗게 모양낸 후 달걀과 밀가루를 묻혀 튀겨낸 것. 바삭한 겉면과 씹는 맛이 살아있는 쌀알이 부드러운 치즈와 어우러지고, 곁들여진 아이올리(Aioli) 소스가 미묘하게 톡 쏘는 끝 맛으로 여운을 남긴다. 빨간 부스와 벤치형 좌석, 대리석 테이블과 벨벳 의자로 꾸며 고전적인 분위기지만, 널찍한 공간과 개방된 주방에서 분주한 손길이 만드는 활기찬 공기가 편안함과 생기를 준다. 볼피노는 반듯하고 신선한 균형을 보여주는 레스토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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