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소 자리에 지어진 카페라 이름이 현상소다. 흔한 입간판 하나 없지만, 이색적인 분위기 덕에 입소문을 탔다. 분위기에 한몫하는 건 바닥과 벽, 전등갓부터 테이블보까지 온통 하얀 인테리어다. 창문에 가까운 곳은 밝지만, 안쪽은 어두워 한낮에도 램프를 켠다. 자연광과 램프 불빛이 오묘한 대비를 이루는 이곳에서 밤과 낮이 구분 없이 섞인다. 넓은 공간에 놓인 테이블이 기껏 10개 남짓이라는 점, 메뉴판 대신 편지지에 메뉴를 써 봉투에 넣어 준다는 점도 독특하다.
이태원의 술집 야채가게를 경영하던 주인장이 지인들과 의기투합해 현상소를 열었을 때, 이들은 서비스나 음식이 아닌 낭만을 팔고자 했다. 돗대기 시장처럼 다닥다닥 몰린 테이블에서 사람들이 번잡하게 웅성대는 것이 아니라, 조근조근 낮은 목소리로 교감하는 곳. 이곳은 그런 곳이다. 메뉴가 적힌 편지지는 처음으로 연애편지 받을 때의 설렘을 떠오르게 하고, 테이블에서 소근거리던 사람들은 소리 죽여 깔깔댄다. 현상소의 청년들도 이곳에서 꿈을 꾼다. 작은 작업실은 통유리로 만들어져 내부가 훤히 보인다. 이곳에서 패션과 주얼리 디자인을 전공한 카페 디렉터들이 작품을 만들어 바로 앞의 쇼케이스에 진열한다. 가까운 미래에 판매를 시작한다고 하니 관심 있다면 문의할 것.
커피는 모두 7000원, 디저트는 5000원이다. 씨솔트 크림 에스프레소와 초코크림 온 더 밀크는 모두 소금이 살짝 들어가 단맛을 강조한다. 소금을 뿌린 수박이 더 달게 느껴지고, 소금을 넣은 캬라멜이나 초콜렛과 같은 이치다. 코코아보단 진하고, 핫초콜릿보다는 연한 초코크림 온 더 밀크는 소금 몇 알 덕에 흥미로운 메뉴가 된다. 애플 크럼블 시나몬 파이 역시, 켜켜이 쌓인 파이결과 달달한 아몬드 크럼블, 시나몬 시럽에 뭉근하게 졸인 사과가 조화를 이룬다. 아몬드 크럼블은 살짝 눌어붙어 캐러멜처럼 바삭한 질감을 더한다. 현상소의 메뉴는 카페의 분위기를 꼭 닮았다. 살짝 틀거나 조금 더했을 뿐인데, 눈을 뗄 수 없이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