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꼽히는 김환기 화백의 작품이 한국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인 63억 3000만원에 낙찰됐다. 이런 고가의 미술품 경매는 매일 접하는 소식이 아닌 데다 한 번쯤 해볼 수 있는 만만한 가격대도 아니기 때문에 늘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 먼 나라의 이야기를 가까운 나라의 이야기로 실천하고자 한 공간이 있으니 그곳이 바로 서울옥션이 오픈한 프린트 베이커리다. 2015년에 문을 연 이곳은 빵집에서 빵을 고르듯, 누구나 미술품을 감상하고 부담 없이 소장할 수 있길 하는 바람에서 만들어진 공간. 미술품이 ‘비싼 것’이 아닌, ‘값진 것’이 되길 바란다는 프린트 베이커리는 한국 미술 대가들의 작품부터 주목할 만한 한국의 신인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까지, 리미티드 에디션 작품(디지털 판화)을 매우 합리적인 가격대에 판매하고 있다. 리미티드 에디션 작품의 가격은 사이즈에 따라 다르다. A4 용지 반 정도 사이즈의 가장 저렴한 Type 1은 4만9000원이다. 김환기, 박서보, 장욱진, 김찬열 등의 한국 현대미술 대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된 프리미엄 에디션은 작가 본인의 기준에 따라 가격이 책정된다. 30만원에서 400만원 정도의 금액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으나, 여전히 원작 가격의 일부에 불과한 점을 고려하면 욕심나는 가격이다. 프린트 베이커리는 작가 또는 작가 재단과 인쇄물의 수를 정하고, 원작 작가 또는 그 유족이 직접 감수하고, 작가의 친필 서명과 함께 에디션 넘버까지 적어 한정수량으로 제작한다. 작가 취향에 따라 아크릴 또는 종이에 인쇄물이 제작되고, 제작이 완료되면 세상 어디에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작품이 완성된다.
삼청동 미술관길에 자리 잡은 프린트 베이커리를 들어서면 그 군더더기 없는 깔끔함에 매료된다. 몇몇 리미티드 에디션은 원작과 나란히 자리하여, 직접 비교도 할 수 있게 해두었다. 작가들이 만든 작은 미술품이나 라이프스타일 제품(접시, 휴대용 배터리, 의자 등)도 있으며, 제프 쿤즈, 쿠사마 야요이, 앤디 워홀, 다카시 무라카미의 작품도 프린트 베이커리 내에 전시되어 있어 눈을 사로잡는다. 아, 다른 갤러리와는 다르게, 친절한 가격 표시까지 되어 있으니, 직접 금액을 물어야 하는 수고도 덜어준다.
지하에는 매 5~6주마다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는 갤러리가 자리해 있다. 이곳에서 전시를 하는 새로운 작가들은 전시에만 그치지 않고, 프린트 베이커리에서 선보이는 다른 작가와 협업해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판매도 한다. 두 작가의 예술을 한 미술품으로 만날 수 있는 것. 가격 또한 부담스럽지 않아 그야말로 일석이조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