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숍과 대형마트의 영향으로 ‘전자제품 쇼핑의 천국’이라는 한 때의 번영을 뒤로 한 채 스러져 가는 듯한 국제전자센터. 하지만 9층은 사정이 다르다. 이 곳은 흔히 ‘오덕후의 성지’, 또는 ‘오덕후의 낙원’이라 불리는데, 9층에 도착하면 바로 그 이유를 알게 된다. 대한민국 남성 100명 중 99명이 좋아한다는 플레이스테이션과 게임CD, 닌텐도 등을 취급하는 게임 숍부터 크고 작은 피규어 전문숍, 건담을 포함한 다양한 프라모델 숍, 가챠 숍 등, 전자제품과 장난감 덕후를 위한 천국이 펼쳐진다. ‘오덕후’라는 단어와 문화가 일본에서부터 시작된 것을 반영하듯 일본 애니메이션 게임과 피규어도 지천이다. 원피스, 나루토, 태권브이, 도라에몽 그리고 희소성 높은 가챠 아이템 등은 꾸준히 인기가 있고, 최근에는 마블과 디씨코믹스 영화 속 히어로를 연기한 배우들의 모습을 6분의 1로 축소 제작한 핫토이 숍도 인기가 좋다. 좋아하는 애니메이션과 캐릭터에 있어서는 한 ‘덕질’하는 에디터도 입이 떡 벌어질 만한 가격이지만, 이곳에서는 없어서 못 판다. 눈 앞에서 200만원짜리 배트맨 차 모형이 팔려나가는 것을 부러운 눈으로 보고 있던 에디터에게 핫토이 숍 주인은 “취미 생활도 다 돈입니다”라고 잔인하게 일침했다.
국제전자센터 9층에서 만난 사람들은 각기 엄청난 자부심과 열정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매장을 운영하는 주인들은 그들이 평생을 사고 모은 희귀 아이템을 하나 하나 침 튀겨가며 열심히 소개한다. 야시시한 자세로 F컵 왕가슴을 자랑하고 있는 미소녀 피규어를 뚫어질 듯 쳐다보는 ‘미소녀 덕후들’은 나름의 고르는 기준이 있다. 아예 자리를 잡고 원하는 피규어가 나올 때까지 가챠를 돌리는 사람에게서는 장인의 정신마저 느껴진다. 그들에게 자극받아 에디터도 양손 가득 장난감을 구매했다. 보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해 구매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이 곳, 멀쩡한 사람도 ‘오덕후’가 되어 나가니 과연 ‘오덕후의 성지’ 답다.
국제전자센터(이하 국전)에서 만난 사람1.
“우리나라에 ‘얼리어답터’라는 말을 이슈화 시킨 대표주자 최문규 씨가 2001년쯤 ‘얼리어답터’라는 사이트를 열었어요. 전자제품에 대한 후기나 서로의 취미를 심도있게 나누는 동호회예요. 개설한 지 얼마 안되어 회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사이트 내 소그룹 사람들이 하나 둘씩 피규어숍을 내면서부터 지금의 ‘키덜트’ 세대의 초석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저도 물론 그 세대고요.”
국전에서 만난 사람2.
“어릴 때 돈이 어디 있었겠어요 부모님한테 조르는 것도 하루 이틀인데, 나이가 들고 내 힘으로 돈 벌기 시작하면서 무장해제가 되었죠. 마음껏 즐길 수 없던, 짓눌려 있던 내 안의 욕구가 분출되었다고나 할까요? 저는 남들은 유치하다 할지 몰라도 짱구를 최고라 치는데요, TV만화로만 접하다 돈을 벌면서 조금씩 짱구 피규어를 모으기 시작했는데, 겉잡을 수 없이 많아져서 그냥 이렇게 숍을 차리게 됐어요.”
국전에서 만난 사람3.
“제가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피카츄 장난감을 몇 개 가지고 있다고 어디가서 ‘나 피카츄 덕후야’라고 명함 내미는 사람들. 피카츄를 좋아하면, 관련 된 모든 걸 가지고 있어야 그게 진짜 덕후죠. 저는 제가 좋아하는 태권브이 장난감부터 조각 난 전단지까지 다 모았어요. 우습게 보일지 몰라도, 전 제가 덕후인 것에 자부심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