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저렇게 감정을 노래로, 춤으로 표현하는 게 뭘까?’ 뮤지컬이더라구요. 저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했죠.” 주말의 명화에서 방영해준 “사랑은 비를 타고”를 보던 고등학생은 지금 데뷔 27년 차 뮤지컬 배우가 됐다. 몸이 아팠다가도 무대에 서면 에너지를 받는다는 그녀는 뮤지컬 배우가 조금은 천직 같다고 말했다. 뮤지컬 배우가 천직이라면, 뮤지컬 “시카고”는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작품이 될 것이다. “시카고”는 록시 하트라는 역으로 그녀에게 첫 여우주연상을 안긴 작품이며 역할을 바꾸어 그녀가 초연부터 지금까지 열 두 시즌째 빠지지 않고 참여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제가 지금 햇수로 16년째 하고 있지만 정말 관리 잘해서 “시카고" 만큼은 좋은 배우들과 오래오래 하고 싶은 욕망이 있어요.” 뮤지컬 “시카고”의 개막을 앞두고 연습실로 향하는 길에서 배우 최정원을 만났다. 그녀는 이야기를 하며 무대에서처럼 표정을 짓고 대사를 읊었다.
어느덧 12번째 시즌이다.
“시카고”라는 작품이 묘한 게 하면 할수록 더 재미있다. 지금 관객들이 보는 많은 뮤지컬이 메커니즘에 의해서 무대세트와 의상이 변하지 않나. “시카고”는 그런 장치 없이 배우들의 재능으로 이루어진다. 뮤지컬 배우 하면 떠오르는 게 노래, 춤, 연기지 않나. “시카고”라는 작품만큼 이 세 가지를 골고루 나눠 가진 게 있을까 싶다. 그래서 누가 하느냐에 따라 퀄리티가 달라진다. 컨디션이 좋은 날과 안 좋은 날의 차이도 많이 난다. 반대로 배우들의 성취감은 굉장히 높은 작품이다. 내가 뮤지컬 배우로 살고 있다는 걸 많이 느끼게 한다.
함께 만든 대사나 장면이 많을 것 같다.
2막이 시작되고 사다리에 올라가서 “잘 ‘쉬~’다 왔어?” 하는 대사는 원래 대본에는 없다. “웰컴!어서 오세요!” 이런 영어적인 표현이 아니라, 그냥 관객들이 정말 ‘쉬’하러 갔다 온 거지 않나. 우리나라 정서에 맞게 바꾼 것이 많다.
지난 시즌에 출연한 배우들이 다시 모였다.
이번 “시카고” 내한공연을 다 봤다. 공연이 진짜 좋았다. 그러다 보니 더 빨리 하고 싶은 거다. ‘그래!’ 이런 느낌을 받았으니까. 자극도 됐고. 공연을 보며 좋았던 것들은 조금 더 접목하고 부족한 부분은 채워나가야 할 것 같다.
초연에서는 록시를, 지금은 벨마를 연기한다. 처음 벨마를 맡게 됐을 때의 기분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면.
2000년도에 록시 하트로 시작하고, 2007년도에 벨마 켈리를 맡아서 하게 됐다. 처음에 섭섭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왜냐하면 ‘아직 나 록시 할 수 있는데, 다시 하면 더 잘할 것 같은데’라는 마음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세월이 흘렀고 여러 작품을 하면서 어느덧 후배가 더 많은 나이가 됐다. 또 후배들이 정말 잘한다. 사실 이 역할에서도 록시가 등장하며 한물간 여배우가 되지 않나. 그래서 나를 내려놓고 ‘한번 잘해보자, 록시를 많이 서포트해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2000년도에 록시를 하며 첫 여우주연상도 받고 많은 이슈가 됐는데, 2007년도에 벨마로 바꾸니 반응이 너무 뜨거웠다. 배우로 살아가면서 같은 공연에 두 가지 역할을 한다는 게 쉽지 않은데, 이런 기회가 오고 그걸 소화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두 역할은 각각 어떤 매력이 있나?
록시 하트는 드라마 쪽으로 굉장히 탐나는 역할이다. 특히 모놀로그. 이거는 사람들 앞에 나서서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당신한테 ‘사실 나는 진짜 뜨고 싶어’ 이렇게 속삭이는 거다. 원맨쇼 같은 느낌이 들면서 진짜 재미있다. 관객들이 춤과 노래를 할 때보다 더 반응이 좋을 땐 정말…. 그런 것부터 시작해서 록시는 쥐었다 놓았다, 남자뿐만 아니라 관객들을 갖고 놀아야 한다. 벨마는 굉장히 쿨하다. 지금 누가 옆에서 때린다고 하면 록시는 “아우 아퍼~” 이렇게 하지만 벨마는 “뭐 하는 거야, 지금” 이렇게 할 거다. 사실 나는 록시에 더 가까운 성격인데 그것을 조절하면서 이 공연에서 벨마인 듯, 사회자인 듯, 아니면 최정원인 듯 알게 모르게 하는 그런 매력이 있다.
배우가 하기 즐거운 작품이랑 관객이 보기 즐거운 작품은 다른 걸까?
모르겠다. 나도 공연을 자주 보러 가는 관객인데, 내가 좋아한다고 관객이 좋아하고 내가 싫어한다고 관객이 싫어하는 게 아니라 느낌이 다 다른 것 같다. 나는 좀 드라마가 강한, 그러니까 연기 위주로 가는 공연을 좋아한다. 내가 하지 않았던 작품으로는 “넥스트 투 노멀”, “아이다” 이런 작품. 그리고 펑펑 우는 걸 좋아한다. 대사가 딱 끝난 다음에 멜로디만 나와도 가슴이 아픈 그런 작품들 말이다.
“시카고”를 하며 이번이 마지막이겠지 생각한 적은 없나?
그런 생각은 한번도 한 적이 없다. 마지막일 수 밖에 없으면 모를까, ‘이번이 마지막일 거야’ 하고 공연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 나이 때문에 ‘이것이 나의 마지막일 거야’ 이런 생각은 안 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