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과 연극 무대를 오가는 배우 전미도를 두고‘연기 잘하는 배우’라고 한다. 그 말이 맞다. 그녀는 현재 뮤지컬 [스위니 토드]에서 러빗 부인으로 출연 중이다. 이전 역할과 비교해 독보적으로 독특한 이 캐릭터를, 그녀는 물 만난 고기처럼 연기해낸다.
러빗 부인을 한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어땠나?
이 작품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을 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를 조안나 역이라고 생각했다. 조안나가 아니라 러빗 부인이라고 얘기하니 모두의 표정에 물음표가 있었다. 당연한 거다. 이런 캐릭터를 해본 적이 없으니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을 거다. 나 역시도 그랬고. 하지만 그래서 더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 같았다. 지금은 아마 내가 조안나를 한다고 하면 다들 비웃겠지.(웃음)
당신이 설정한 러빗 부인은 어떤 인물인가?
에릭([스위니 토드]의 연출)이 처음 던진 말이 ‘러빗은 토드를 좋아한다’, ‘그녀는 절박하다’였다.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러빗의 거짓말을 토드가 알아차렸을 때, 러빗은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내가 더 잘하겠다, 그러니 빨리 결혼하자 노래한다. 거짓말이 들통난 상황에서도 자신의 마음을 토해내는 게 절박해 보였고, 그래서 더욱 진심이라고 느꼈다. 거기서부터 출발했다. 사랑에 빠진 여자. 어떤 상황의 여자였길래 복수심에 불타는 남자를, 진실을 숨겨가며 손에 넣으려 했던 것일까 역추적했다. 불쌍했다. 러빗의 삶이. 그리고 이해가 됐다. 여자 혼자서 먹고살기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오래 전 흠모하던 토드가 돌아왔을 때 놓치고 싶지 않았을 거다. 이 정서를 바닥에 두고 하나씩 색깔을 입혀갔다. 기본적으로 러빗은 아줌마다. 억척스러움, 뻔뻔함, 경험에서 오는 유머러스함, 오지랖, 모성애. 이런 것들을 하나씩 입혀가니 참 이상한 여자가 되더라.
러빗 부인의 천연덕스러움에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연기를 할 때 웃음이 터질 뻔한 적은 없었나?
연습할 때 캐릭터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많이 웃었다. 노래를 제대로 못할 때가 많았고, 웃음이 터져 대사를 거의 울면서 할 때도 있었다. 사실 이 작품이 워낙 대사가 많고 리듬과 템포가 빠른 공연이라 실수가 꼭 생기는데, 연습할 때 그런 과정을 거쳐서인지 어느 정도 참을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대신 무대 뒤에서 대기하고 있는 배우들이 터진다.(웃음)
"일부러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지’ 하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또 ‘이런 건 꼭 해보고 싶다’도 없다. ‘평범한 것도 새롭게 만들고 싶다’가 더 정확한 내 욕망일 거다."
이번 공연은 말맛 살린 대사가 특히 좋다. 어디까지가 애드리브고 어디까지가 대본일까 궁금할 정도다.
그런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데에는 번역과 각색을 맡은 작가 김수빈 씨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한다. 애드리브 같은 대사도 거의 작가님이 써준 거다. 센스가 엄청난 분이다. 러빗이 1층에서 2층으로 이동하는 시간 동안 정적이 흐르는 걸 막기 위해 하는 애드리브 말고는 거의 대본에 충실했다. 특히 러빗 캐릭터의 묘미는 이 ‘말맛’에 있는데, 정말 작가님께 감사하다. 캐릭터를 거의 만들어준 거나 다름없다.
[스위니 토드]는 뮤지컬이 무엇인지, 뮤지컬에서 음악의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무대에 오르는 배우로서 [스위니 토드]는 어떤 작품인가?
나에게는 노래에 대한 두려움을 벗고 오히려 노래에 대한 즐거움을 준 작품이다. 사실 연극과 뮤지컬을 오가며 가장 힘들었던 것이, 연기를 하다가 가창력이 필요한 아리아 같은 걸 부르는 거였다. 대사의 톤과 노래의 톤을 맞추는 게 굉장히 힘들었다. 그런데 [스위니 토드]는 대사와 노래의 톤이 잘 맞춰져 있다. 노래한다는 생각보다 대사를 이어서 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캐릭터에 부합되게 노래가 연결되어 있고, 노래의 느낌에 인물의 현재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 배우가 정서를 끌어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잘 흘러간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그리고 손드하임의 멜로디는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마약 같다. 부르면 부를수록, 들으면 들을수록 좋다.
최근 가장 크게 욕심 낸 일은 뭔가? 러빗 부인은 자신이 목표한 것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탐욕스러운 인물이다.
이 작품을 선택한 게 아닐까. 영화나 다른 영상을 보고 사실 엄두가 안 났다. 그런데도 욕심을 냈다.
팬카페 이름이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 전미도’다. 아직 보여주지 않은 얼굴이 있다면?
들을 때마다 참 부끄러운 말이다. 어디까지나 팬심에서 나온 말이다. 천의 얼굴까진 아니다.(웃음) 잘 모르겠다. 새로운 캐릭터가 오면 도전해보고 싶은 욕망이 솟구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부러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지’ 하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또 ‘이런 건 꼭 해보고 싶다’도 없다. ‘평범한 것도 새롭게 만들고 싶다’가 더 정확한 내 욕망일 거다.
80세까지 무대에 오르고 싶다는 인터뷰를 봤다. 오랫동안 무대에 서는 배우가 되는 데 필요한 것은 뭘까?
체력과 기억력. 그리고 그 욕망을 유지하는 것이겠지.(웃음)
배우 전미도가 출연하는 뮤지컬 [스위니 토드]는 샤롯데씨어터에서 10월 3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