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오케피 황정민

연출가가 된 배우들

두 편의 영화로 연달아 천만 관객을 동원한 배우 황정민은 지금 뮤지컬 "오케피" 연출로 바쁘다. "레미제라블"에 출연 중인 양준모는 동시에 오페라 "리타"의 무대 뒤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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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막하는 공연의 연출가 크레딧에서 낯익은 이름이 자주 발견된다. 바로 배우 출신의 연출가들이다. 영화 배우나 뮤지컬 배우로 활동해온 이들이 연출에 도전하는 것이다. 그동안 배우에서 제작자로 변신해 활동한 사례는 공연계에 많았다. 송승환 PMC 대표, 설도윤 설앤컴퍼니 대표, 김미혜 샘컴퍼니 대표, 조재현 수현재컴퍼니&씨어터 대표, 김수로 프로젝트의 김수로 프로듀서 등이 대표적이다. 작품을 종합적으로 조망하는 지휘자의 성향을 가진 배우들은 연출에 도전하고 있다. 최근 공연 중이거나 개막을 앞둔 작품의 배우 출신 연출가로는 오만석, 황정민, 양준모, 박희순 등이 주목받는다.
 
오만석은 한국종합예술학교 연기과 1기 출신으로 연극과 뮤지컬에서 두루 활동했다. 공연계 인기 배우로 등극한 후에는 TV와 영화 활동도 활발하다. 그는 뮤지컬 "즐거운 인생"(2008)으로 연출가 데뷔를 한 이래 "내 마음의 풍금"(2010–2011), "톡식 히어로"(2011), 그리고 자신이 배우로 참여한 연극 "트루웨스트"(2015)의 연출을 맡았다. 그와 작업한 동료 배우들은 그가 특유의 친화력으로 배우가 가진 코믹성을 이끌어내는 데 소질이 있다고 말한다. 그가 연출한 작품은 대부분 자신이 배우로 출연한 작품이다.
 
연기파 국민배우 황정민은 2012년 출연과 동시에 연출을 맡은 뮤지컬 "어쌔신"을 통해 연출가로 데뷔했다. 이 작품은 2005년 한국 초연 이후 국내 제작사를 세 번 바꿔가며 한국 라이선스 공연으로 만들어졌다. 그때마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는데, 그의 손에서 원작의 위트와 블랙코미디 요소가 잘 살아나 비로소 한국 공연이 완성되었다는 호평을 받았다. 그는 올 연말 개막 예정인 뮤지컬 "오케피"에서도 연출가와 배우를 겸한다.(두 작품 모두 샘컴퍼니 제작으로, 김미혜 프로듀서와 황정민 배우·연출가 부부의 협업이기도 하다.) 또한 "오케피"에서 그와 같은 배역을 맡은 배우는 오만석이다. 두 배우 겸 연출가가 나눠 맡은 주인공 역할은 오케스트라 지휘자. 공연 연출가와 마찬가지로 조직을 이끄는 카리스마와 리더십이 필요한 직업이다. 그래서 더 흥미롭다. 두 사람의 작품 해석과 치열한 협업이 한국 초연의 완성도에 얼마나 크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인가, 남다른 기대감을 갖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뮤지컬은 대중화된 역사가 짧고 연출가의 수가 부족하기 때문에 제작자들이 무대 경험이 많은 배우를 연출가로 재배치하는 데 별다른 거부감이 없다. 

가창력 좋은 뮤지컬 배우에 항상 1순위로 꼽히는 양준모. 그는 지난해 뮤지컬 배우가 다수 출연한 오페라 "리타"(2014)에서 해설자를 겸한 연출가를 맡았다. 성악을 전공해 오페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데다 평소 위트 있는 성격으로, ‘코믹한 실내 오페라’라는 새로운 시도를 깔끔한 무대로 보여줬다. 이 작품은 올해 앙코르 공연까지 가졌다.

그런가 하면 배우 박희순의 깜짝 연출가 발탁은 올여름 핫뉴스였다. 스크린에서 포근한 모습을 보여온 그의 연기 고향은 대학로 소극장이다. 그가 연출가로 데뷔한 작품은 주호민 작가의 동명 웹툰을 뮤지컬로 각색한 "무한동력". 이지혜 작곡가는 박희순이 극단 목화 단원 시절부터 배우로서만이 아니라 스태프로도 헌신하는 모습을 보고 작품의 연출을 제안했다고 한다. 그는 녹록지 않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을 코믹하면서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그렇다면 많은 배우가 무대, 그중에서도 특히 뮤지컬 연출에 도전하고 일정 이상의 성과를 거두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에서 뮤지컬은 대중화된 역사가 짧고 연출가의 수가 부족하기 때문에 제작자들이 무대 경험이 많은 배우를 연출가로 재배치하는 데 별다른 거부감이 없다. 이지나("서편제", "광화문 연가"), 유희성("피맛골 연가", "투란도트" 등), 한진섭("아이러브유") 등 현재 한국 뮤지컬계의 유명한 중견 연출가들이 과거 뮤지컬 전문 배우였다는 점도 배우 출신의 연출가에 대한 업계의 긍정적인 시각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배우로서 무대 경험이 많은 연출가는 주어진 대본을 구어체로 자연스럽게 각색하거나 배우에게 연기에 대한 세밀한 지침을 전달하는 데 강하다.
 
물론 배우들의 연기 지도에 치중하느라 무대 디자인이나 기술 환경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애를 먹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는 무대감독을 비롯한 전문 스태프를 적절히 활용하고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연습 과정을 거치면서 서서히 전체를 장악해나갈 수 있다. 상대적으로 기술적인 부분의 의존도가 낮은 소극장에서 배우 출신 연출가들의 운신의 폭이 더 넓다고 볼 수도 있다. 우리 공연계의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그들의 도전과 활약을 흥미롭게 관전하는 것도 즐거울 것이다.

글 조용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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