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되면 누구나 혼자서 긴 산책을 하게 마련이다. 귀에는 헤드폰을 쓰고 바스락거리는 갈색 낙엽을 밟으며 한 걸음 한 걸음을 걷는 즐거움이 남다르다. 서울 성곽에 기대어 걷는 밤 산책은 꼭 혼자서 즐겨야 하는, 그런 나들이는 아니다. 이 산책의 너머에 무언가가 있다. 나는 걸어가며 만난 여러 장소의 이름이나 역사적 배경을 기억하지는 않는다. 나와 함께 그 장소를 방문한 사람들을 통해 그곳을 더 진하게 기억한다. 내가 언젠가 데이트를 하면서 누군가에게 말했듯이, 이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산책길'이다. 이 산책의 전주곡은 혜화역 2번 출구에서 시작된다. 지하철역 출구 바로 옆에는 마로니에 공원이 있고, 연극을 공부하는 학생이나 무명 배우들이 대사를 외우려 애쓰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숨이 가빠오는 낙산공원의 계단을 오르다 보면 추억 속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이 생각나기도 한다. 공원의 초입에 위치한 재즈스토리는 기억해두자. 낡은 레코드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조명 아래서 값싼 맥주를 마실 수 있다. 꼭대기에 오르면 마침내 서울 성곽길에 다다른다. 이 성벽 중 나는 낙산에 위치한 성곽을 가장 좋아한다. 성곽길을 오르다 지칠 때면 내 스스로에게 상을 준다는 느낌으로 잠시 쉬어가도 좋다.
힘들게 버텨낸 무더운 여름에 비해, 가을은 너무 짧다. 높고 푸른 하늘과 울긋불긋하게 물든 단풍, 자연을 느끼기에도 모자란 시간이지만 올가을 서울에는 즐길 게 많다. 집 밖을 나와 서울의 가을을 즐기자. 억새와 단풍 명소는 물론,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서울의 오래된 명소, 그리고 가을에 대대적으로 열리는 서울거리예술축제까지 올가을 놓치면 안 될 10가지를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