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암 기차여행

태백 협곡을 뚫고 기차를 타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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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렬히 기차를 사랑한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기차를 탈 때면 불에서 피어나는 꽃과 작은 새싹, 그리고 많은 추억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칠레의 테무코에는 그를 기리며 지은 국립철도박물관이 있으며, 이곳에는 그의 시가 수놓여 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중부 내륙 순환 열차인 오트레인(O-train)을 타고 이동하는 다섯 시간 동안 차분히 생각에 잠겨 여행할 내 자신을 상상했다. 내 기차여행의 뮤즈였던 노르웨이 베르겐의 그 산악 열차처럼 말이다. 하지만 열차는 정신없는 케이팝 리스트와 운행하는 내내 진행된 게임쇼, 그리고 그 쇼의 MC이자 승무원들로 인해 내 상상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모습이었다. 우리가 오트레인에서 백두대간 협곡열차인 브이트레인(V-train)으로 갈아타는 분천역에서는 마침 내린 비로 선로에 나뭇가지들이 떨어졌고, 두 시간이나 출발이 지연되었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우리는 근처에 있는 ‘향수수퍼’에서 동동주와 사과를 사 먹었는데, 이 집은 생긴 지 55년이나 된 슈퍼였다. 한참을 기다린 후 마침내 등산복을 입은 아주머니와 아저씨들이 기차의 출발에 환호했고, 그제야 브이트레인은 다음 역으로 향했다. 브이트레인을 타는 시간은 한 시간뿐이었지만, 가히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기차는 빗방울과 졸졸 흐르는 계곡물로 젖은 산의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가는데, 그 열차에 앉아 창문을 열고 터널을 이리저리 빠져나가는 기분이란, 정말 기차여행의 참맛을 보여주었다. 이 열차에서 가장 아름다운 백두대간을 볼 수 있는 계절은 바로 겨울이라고 한다. 하지만 때때로 보이는 ‘꿩의바람꽃’이 마치 눈처럼 보이기 때문에 겨울이 아닌 때에도 산의 아름다움은 충분히 느낄 수 있을 듯하다. 철암에서는 철암 탄광 역사촌을 방문했다. 이곳에는 1940년-1960년대에 지은 탄광과 건물들이 보존되어 있다. 우리가 갔을 때는 흐린 날씨 때문인지 도시 분위기가 더욱 사실적이었다. 몇몇 건물 안에는 사람 실물 크기의 모형들과 함께 철암 역사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패널에 적힌 설명이 사실 그리 흥미롭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탄 태백시장행 4 번 버스의 김근배 기사 아저씨는 정말 재미있는 분이었다. 그는 승객 한 명 한 명에게 인사를 건네고, 버스가 건물을 지나칠 때마다 각각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사람들이 잘 모르기 때문에 그냥 지나치는 풍경이 있다는 게 좀 안타까워서요” 하고 말하는 철암의 기사 아저씨. ‘현대실비’에서 태백의 명물 한우를 연탄불에 구워 먹고 나서, 우리는 정선에 위치한 현대적인 스타일의 ‘락있수다’ 펜션으로 향했다. 주인 김재일 씨는 따뜻한 차를 건네며 “저는 겨울 기차를 타고 이곳에 오면서 비로소 태백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어요”라고 말했다.

여행 일정표

8:15am – 서울역에서 오트레인 탑승

1:00pm – 분천역 도착

3:00pm – 철암행 브이트레인 탑승

4:00pm – 철암역 도착, 철암 탄광 역사촌 방문

5:00pm – 버스로 태백시장 이동, 실비현대 식당에서 연탄 한우고기 저녁 식사

8:00pm – 택시로 ‘락있수다’ 펜션 이동

여행 팁

1. 보통 기차에는 두 종류의 도시락이 준비되어 있다. 밥, 김치와 메인 반찬 한 가지가 들어 있는 작은 도시락이 8000원인데 금방 동이 난다. 출발하기 전 요깃거리를 사놓는 것도 좋은 방법.
 
2. 철암 지역에서는 택시 요금을 미터기대로 받지 않고 흥정을 통해 요금을 결정한다. 지역 간의 이동이면 미터기에 표시된 요금보다 2만원을 더 내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3. 코레일 웹사이트에서 오트레인과 브이트레인 표를 구입할 수 있다.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관광 정보 핫라인인 1330번으로 연결할 것.
 
4. 날씨가 추울 때에는 기차가 연착되거나 취소될 수도 있다. 이번 여행에서는 기관사가 버스로 철암까지 이동할 수 있다는 점과 기차표는 환불이 가능하다는 점 등을 안내해주었다. 게다가 크림빵과 우유도 나누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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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있수다
락있수다
“저는 그냥 놀 수 있는 공간을 원했어요.” 다목적 락있수다 카페의 김재일 대표의 설명. 이 펜션에는 여섯 개의 방이 있다. 페라리 레드, 스텔스 블랙, 스패니시 플루, 플라멩고 화이트, 바비 핑크, 그리고 오리엔탈 골드까지. 종종 괴짜로 불리는 저명한 건축가 문훈 씨가 지은 이 건물의 방들은 각각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단순히 방의 색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주는 인식에서도 그러하다. 예를 들어 페라리 레드 방은 낮으면서도 넓은 시야에서 산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며, 스페인 블루 방은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하늘을 강조한다. 이 펜션은 지금 약간의 수리를 하고 있는데(금이 간 창문이나 자주 말썽을 부리는 보일러 같은 것들), 그럼에도 방문할 가치가 있다. 특히 주변에 있는 평범한 집들 사이에서 락있수다 펜션의 외관은 더욱 돋보인다.

철암 탄광 역사촌

철암은 역사적으로 유명한 탄광촌 동네이다. 1997년부터 이 역사적인 장소를 유지하기 위해 토지를 구입하고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해오고 있다. 공식적으로 아직도 사용되고 있는 탄광촌을 제외하고는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큰 탄광촌으로 알려져 있다. 탄광촌 옆길에 자리한 옛날 미용실과 작은 가게들을 보면 아직 장사를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각각의 개성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그때 그 시절의 향수와 당시 탄광촌의 동네의 소소함을 느껴 볼 수 있는 아담한 공간이다. 

향수 슈퍼

분천역에 위치한 조그만 한 구멍 가게다. 생긴 지 55년이나 된 집이다. 철암역으로 가는 브이트레인을 갈아타려고 있었던 분천역에서 20분쯤 여유시간이 생겨 이 향수수퍼에서 이것저것 간식거리를 구입할 수 있었다. 물론 오트레인과 브이트레인 안에서도 요깃거리를 살 수 있지만 이 슈퍼를 꼭 방문해야 할 이유는 분천지역에서 직접 만든 동동주를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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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배 기사 아저씨

탄광촌에서 태백시장으로 가는 마을 버스 안에서 만난, 서울에서는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친근한 버스 기사 김근배 아저씨. 버스를 타자마자 외지인이었던 우리를 알아보고 근방에 있는 관광 명소인 구문소부터 시장으로 가는 길까지 친절히 태백 시내를 설명해 주었다. 태백 시내를 개인적으로 구경을 시켜주고 싶어 하셨지만 다음날 벌초 하러 원주를 가야 해서 매우 아쉬워하며 겨울에 꼭 다시 돌아오라며 당부를 하셨다. 

윌의 동동주 사랑

한국인보다 더 한국적인 것을 좋아하는 미국인 친구 윌의 적극 추천으로 지역에서 담근 동동주를 구입하게 됐다. 그의 미소에서 볼 수 있듯이 인공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은 지역 특산품 동동주는 매우 탁월한 선택이었다.  

기차여행의 동행자, 윌 언트의 후기

브이트레인이야말로 내 주말 기차여행의 하이라이트였다. 분천역에서 기차 출발이 지연되었을 때 우리는 주변에 있던 현란한 색의 산타마을을 돌아보고 동네의 소박한 마을에서 산책도 할 수 있었다. 동네의 작은 가게에서 병에 상표도 붙어 있지 않은 동동주와 값싼 사과를 샀는데, 달콤하고 부드러운 동동주와 아삭아삭한 사과 안주는 시간을 보내는 가장 완벽한 방법이었다. 분천역의 대합실에는 작은 도서관과 함께 옛날식 기관사 유니폼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걸 입어볼 수 있는 것도 정말 좋았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기차 안에서 나오는 방송을 거의 알아듣기 힘들겠지만(예를 들어 양원역은 한국에서 가장 작은 역이라고 한다), 풍경은 정말 아름답다. 안개에 가려진 바위는 계곡을 따라 늘어서 있고, 기차가 어두운 터널 안에 있을 때면 이제 다음에 만나게 될 풍경은 무엇일까 궁금해질 정도였으니까. 작은 역에 짧게 정차할 때면 잠깐 시골 공기를 쐬거나 선로 근처의 작은 가게에서 막걸리 한 잔과 돼지껍데기 한 접시를 즐길 수도 있다. 우와, 하는 감탄을 자아내는 드라마틱한 풍경뿐 아니라 한국 시골의 느릿하고, 어쩌면 조금은 구식인 삶의 방식을 체험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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