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의 서울을 찾아 떠나는 봄, 중림만리길

세월의 손이 닿지 않은 이곳에는 옛 서울의 향취가 배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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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서울 곳곳에 들어선 고가도로는 빛나는 경제적 성장을 상징했다. 그것은 곧 고가도로가 필요할 만큼 사람과 교통량이 늘었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도로를 따라 즐비하게 늘어선 고층 건물은 복잡한 스카이라인을 만들었다. 1975년에 지어진 서울역 고가도로는 청계 고가도로와 함께 서울의 명물이었다. 여행이나 출장을 갔다 오면 서울역 앞을 굽이치며 흐르는 푸른색 고가철도를 눈에 담고서야 서울에 왔다는 것이 실감나곤 했다. 낡은 고가도로를 안전 상의 이유로 철거한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시민이 아쉬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곧 '서울로7017'라는 이름의 보행정원으로 재탄생한다. ‘서울로 7017’ 이름은 1970년대에 지어진 길이 2017년엔 보행길이 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총 1.24Km 길이의 이 고가 보행로 위에는 산사나무, 잣나무 등의 나무와 식물이 심어지고, 북카페와 도서관 등도 자리하게 된다. 이 고가 보행로를 중심으로 주변 지역으로는  '중림만리동 코스', '소공동 코스', '명동 코스', '남산 코스', '후암동 코스' 등 5개의 도보코스가 만들어졌는데, 그중 하나가 중림만리길이다.

서울역 근처 중림동과 만리동을 잇는 2.5km 길이의 길로, 길을 따라 걸으면 옛 서울의 민낯을 보게 된다. 지어진 지 100년이 훌쩍 넘은 성당, 서울 최초로 지어진 오래된 주상복합 아파트, 45년 동안 설렁탕을 팔아온 노포가 이 길 위에 있다. 지척에 있는 서울역과 남대문시장, 시청이 떠들썩해도 아랑곳없이 깊은 잠에 빠져 있던 동네다. 서울의 중심에서 고요히 과거를 살던 중림동과 만리동이, 비로소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운동화를 고쳐 신고, 마법 같은 이곳으로 떠나보자.

[Part 1] 만리동에서 가볼 만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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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7017
서울로 7017
45년간 자동차 길로 이용되던 서울역 고가도로가 새로운 보행길로 다시 태어난다. '서울로7017'은 만리동에서 시작해 남대문시장을 지나 퇴계로를 잇는 고가 철도를 보행로로 만든 것인데, 총 17개 연결로를 통해 회현역과 남산육교, 서울역광장, 청파동, 중림만리길 등으로 갈 수 있다. 경쾌한 발걸음이 들릴 것 같은 이 보행로의 마크는 젊은 예술가 집단인 베리준오(VJO)가 디자인했다. 전반적인 디자인은 네덜란드의 세계적 조경 건축가인 위니 마스(Winy Maas)가 맡았다. 서울로7017 보행길 은 사업 추진 전부터 뉴욕의 '하이라인파크'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시민과 관광객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편의시설과 휴식공간, 조경물 등이 설치된다. 특히, 사계장미, 사과나무, 산사나무, 잣나무를 포함한 200종 이상의 식물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북카페와 꽃집, 도서관과 아이들을 위한 인형극장, 다양한 문화공연이 수시로 열리는 장미무대와 목련무대 등 즐길 거리가 풍성하다. 서울로7017을 찾는 관광객을 위해 다국어 안내가 가능한 관광안내소와 7017 기념관 그리고 서울과 한류 관련 이미지를 볼 수 있는 호기심 화분 등을 조성했다. 서울로7017은 꽃이 만개하는 5월 20일 대중에게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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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붉고 예쁜 성당, 약현성당
작고 붉고 예쁜 성당, 약현성당
중림동의 옛날 이름은 약고개, 즉 약현동이다. 왕을 귀한 약재를 키우는 동네라 약현동이라 했다. 후에 ‘약초밭 가운데 동네’라는 뜻의 중림동으로 이름이 바뀌긴 했지만, 약현동이라는 옛 지명은 성당 이름에 오롯이 남아있다. 중후한 고딕풍의 외관과 갈빗대 모양의 뼈대를 가진 반원 천장(궁륭천장이라고도 한다)까지 영락없는 명동성당의 판박이다. 1892년에 지어졌으니 벌써 120살이 넘은 셈이다.

[Part 2] 만리동에서 먹고 마실 수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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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림동 닭볶음탕 고수, 호수집
중림동 닭볶음탕 고수, 호수집

허름한 식당의 좌식 식탁에 앉아 먹는 것. 닭볶음탕을 먹는 것엔 그런 맛도 있다. 중림동에 위치한 호수집은 소탈한 분위기에서 배 부른 한끼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호수집의 닭볶음탕은 닭을 어느 정도 익힌 채로 휴대용 가스 버너에 올려 내온다. 국물이 많이 들어있는 편이라, 자작한 국물을 선호한다면 조금 시간을 두고졸인 후 먹으면 된다. 풍성하게 올려진 깻잎과 느타리 버섯이 시원한 맛을 낸다. 호수집은 이른 점심 시간부터 반주를 곁들이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국물 맛은 단맛이 두드러지고 맵지 않다. 나름의 장점이 될 수 있지만, 에디터에게는 아쉬웠다. 여러 채소로 양념해 감칠맛이 느껴지는 ‘집밥’보다는 있는 재료만을 가지고 끓인 피서지의 한끼를 생각나게 했다. 또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닭고기의 뼈를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작게 잘려 나온다는 것. 아이들을 먹일 때라면 편할 수있겠지만, 닭볶음탕은 어느 정도 ‘뜯는 맛’이 있어야 제맛이지 않나. 큼지막한 토종닭은 어차피 찾아보기 힘들다고 해도 말이다. 그럼에도 에디터는 이곳에서 밥한 그릇을 모두 비웠다. 특징이 없는 만큼 부담 없는 한끼였고, 반찬으로 나온 파김치와 무김치가 훌륭했기 때문이다. 결론은, 함께 가자는 친구가 있다면 굳이 마음을 돌리려 하지는 않겠지만, 일부러 찾아가지는 않을 집이라는 것. 발품까지 팔기에 닭볶음탕은 그리 찾아보기 힘든 음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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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데우는 설렁탕, 중림장
마음을 데우는 설렁탕, 중림장
이곳의 특별함을 말하려면 우선 곰탕과 설렁탕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전통적인 곰탕은 쇠고기를, 설렁탕은 소 뼈를 오랫동안 고아 만든다. 그래서 곰탕 육수는 투명하고 산뜻한 맛을 내며, 설렁탕 육수는 색이 뽀얗고 깊은 감칠맛을 낸다. 이곳의 설렁탕은 한우 양지와 뼈를 절묘한 비율로 섞었다. 반투명한 갈색을 띄는 육수는 잡내라곤 없으며 뼈국물의 감칠맛에 고기 육수의 고소함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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