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제주도 여행 중이었던 내 친구 오스카는 ‘무전여행’이라고 쓰여 있는 사인을 들고 있는 두 친구를 보고 차를 태워줬다. 알고 보니 그들은 ‘
없는 놈들의 있는 무전여행’이라는, 오로지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만 의존해 여행을 다니는 커뮤니티의 일원이었다. 제주도에서 내 친구를 만난 것도,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갈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낯선 이들의 도움을 통해 이루어진 것. 여행이 끝난 후, 커뮤니티를 만든 리더 한철희 씨와 멤버 이창규를 만났다.
이 그룹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철희 원래 저는 혼자 여행을 다니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제 친구 몇몇이 제가 하는 여행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저와 함께 다니게 되었죠. 며칠은 혼자 다니고 며칠은 다시 만나서 같이 다니는 식으로. 이번에는 용산에서 각자 시작해서 경포대에서 만난 다음에, 동해안을 따라 부산까지 쭉 내려갔어요. 그리고 거기서 제주도까지 비행기를 타고 간 다음 그동안 모은 돈을 기부했죠. 여행 계획부터 사인 만드는 것까지 함께하면서 SNS에 홍보를 했더니 사람들이 저희에게 먼저 관심을 보여주었어요.
사인은 어떻게 만든 거예요?
철희 용산 이마트에 다 같이 가서 라면 박스랑 박스테이프, 마커를 빌렸어요. 그리고 장장 세 시간 동안 그려서 만든 겁니다.
어떻게 돈 한 푼 없이 여행을 다니나요?
철희 주로 히치하이킹을 합니다. 잠은 교회에서 자고요. 기사식당 같은 데 가서 밥을 먹고(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기사식당 진짜 맛있어요) 설거지를 대신 하죠. 생각보다 사람들이 무척 친절해요. 밥은 먹고 다니냐 물어보시면서 나중에 밥을 사주시는 분들도 있다니까요. 저희들의 미래 계획이나 꿈을 얘기하면 고맙다고 막 만원짜리를 쥐어주시고요. 인생 상담을 많이 해주셨어요. 졸업하고 나선 뭘 해야 하나, 대학은 꼭 가야만 하는 건가, 이런 질문에 대해서 말이죠.
창규 저는 원래 걷는 걸 좋아해서 혼자 오랫동안 걸어 다니는 건 신경 안 써요. 근데 밥 먹는 건 중요해요. 한번은 진짜 가진 게 햇반밖에 없는 거예요. 편의점에 몰래 들어가서 뜨거운 물이랑 거기 있던 전자레인지에 밥을 데워 먹었어요. 근데 그게 뭐라고 진짜 맛있어서 뚜껑까지 핥아먹었어요.
서울이 시골보다 여행하기 힘든가요?
철희 처음엔 그럴 거라 생각했어요. 한강공원에서 침낭 하나 갖고 잔 적이 있는데, 그때도 택시 기사 아저씨들이 돈도 안 받고 여기저기 태워다주시고 공원에 피크닉 나온 사람들이 음식도 나눠주시고 그랬어요. 서울이나 시골이나 별 차이 없이 사람들이 다 친절했어요.
노숙도 하나요?
창규 한번은 교회 일곱 군데를 돌아다녀도 받아주는 곳이 없어 거의 노숙할뻔 했는데 마지막 한 곳에서 목사님이 계단에서 잠깐만 기다려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조금 있다가 찜질방 쿠폰을 가지고 오셨어요. 알고 보니 그분이 직접 찜질방에 가서 쿠폰을 사 오신 거였어요.
받기만 하면 좀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나요?
철희 당연히 그렇죠. 그런데 저희도 사람들을 이 모든 경험의 하나로 만들려고 노력해요. 저는 공동체에 대한 믿음이 강해서 옛날부터 청소년자살방지프로그램 같은 곳에서 일하기도 했어요. 우리는 도움 주시는 분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손편지에다 질문 하나랑 휴대폰 번호를 적어서 드려요. 예를 들어 ‘무엇이 당신을 행복하게 하나요’를 써 드리고, 우리에게 문자로 답장을 보내주면 그걸 저희는 SNS에 올리고, 제 나름대로 그분들이 묻는 질문에도 성실하게 답변해드리려고 합니다.
무전여행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철희 언젠가는 저희도 일을 하고 회사를 다니겠죠. 하지만 지금 이순간만큼은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지 알아가는 데 쓰고 싶어요. 현실로 돌아가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거나 도전할 수 있는 시간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