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아래 살고 있는 나는 짬이 날 때마다 남산을 오른다. 한두 시간의 짧은 산책임에도 산에서 받는 위로와 즐거움이 적지 않다. 남산만 가도 이러니, 북한산이나 도봉산에서 받는 기운은 더 크고 좋을 것이다. 게다가 북한산과 도봉산은 서울 안에 있지만 여느 명산 못지않게 훌륭한 산이지 않은가. 하지만 800m가 넘는 북한산 백운대까지 오르기는 쉽지 않다. 산은 좋아하지만, 정상까지 올라가기에는 체력이 안 되고, 조용히 산책을 원하는 사람들이 가기 좋은 코스가 있다. 바로 북한산 둘레길이다. 나도 가볍게 두세 시간 정도를 걸으며 숲과 자연의 내음을 맡고 싶을 때, 서울 안에서 여행을 떠난 듯한 기분을 만끽하고 싶을 때 간다.
북한산 둘레길은 기존에 나 있는 샛길을 연결하고 다듬어서 북한산 자락을 완만하게 걸을 수 있도록 조성한 평평한 산책로다. 전체 길이(71.5km) 중 서울시 구간과 우이령길을 포함해 45.7km를 먼저 개통하고, 2011년에 나머지 구간을 개통했다. 나무길과 흙길, 숲길과 마을길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둘레길은 코스도 21개나 된다. 가벼운 배낭 하나를 메고 친구와 함께 맨 처음 걸은 길은 8코스의 구름 정원길. 우이령 코스와 함께 가장 인기 있는 길로, 불광역(또는 연신내역)에서 시작할 수 있다. 총 걸리는 시간은 2시간 30분, 난이도를 따지자면 중간 정도다. 무엇보다 숲 위로 설치된 다리가 인상적인데 이 다리 때문에 구름 정원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다리 위에서는 은평구 일대의 아파트 단지가 내려다보이고, 밑에서 올려다보던 소나무들이 눈 아래에 울창하게 모여 있다. 구름 정원길이 시작되는 길의 왼편으로는 불광사라는 소담한 절도 나온다. 작은 앞마당이 정겹고 휴지통을 편지함으로 개조해 나무 사이에 걸어둔 모양새가 소박한 곳이다. 이 불광사 앞마당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고 다시 숨찬 오르막을 지나면 사진 찍기 좋은 전망대와 억새길이 나타난다. 산 중턱에서 만나는 억새밭은 뜻밖의 풍광을 선사한다. 이곳에서는 멀리 북한산 봉우리들도 선명하게 보이고 그럴싸한 산 경치가 180도로 펼쳐진다. 둘레길을 두 번째로 찾은 시기는 단풍이 한창 들었다가 지기 시작할 무렵의 초겨울이었다. 수유역에서 내려 우이령 계곡으로 들어가 교현리로 나오는 우이령 코스를 걸었는데, 숲으로 들어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반기던 울긋불긋한 단풍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서울에 있다는 사실을 금세 잊게 해준 우이령 계곡은 단풍이 다 져버린 시내와는 달리, 여전히 단풍을 안고 있어 더욱 아름다웠다. 우이령 코스는 둘레길 중 가장 길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민간인의 출입을 금지해오다 2009년부터 탐방 예약제로 개방한 길이라 다른 코스보다 자연의 보존 상태가 좋다. 걷다 보면 다른 구간보다 숲과 나무가 깊고 그윽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우이동 차고지 종점에서 시작하는 코스는 오르막길이라 힘들지만 교현리로 내려가는 길은 군사도로로 사용하던 널찍한 비포장 도로라 걷기 편하다.
산을 다 내려왔을 때 우리는 마치 낯선 시골동네에 떨궈진 기분이 들었다. 시외버스도 타야 했다(여기는 경기도였다). 이 낯설고 그윽한 우이령 코스는 홈페이지 (reservation.knps.or.kr)에서 사전 예약을 하고, 해당 날짜에 신분증을 가지고 와야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일단 숲길로 들어서면 우이령길이 왜 북한산 둘레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코스인지 코끝으로 먼저 알게 된다.
Tip 북한산 둘레길을 굳이 1코스부터 순서대로 걸을 필요는 없다. 코스에 따라 두 개나 세 개의 코스를 이어 걸을 수도 있다. 구름 정원길도 8코스가 끝나는 진관생태다리를 지나 9코스 마실길로 이어 걸을 수 있다.
글 이동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