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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혹은 현실에 지쳤을 때 조용히 찾아와 위로받고 가는 찻집이다. 수연산방은 이미 유명하다. 소설가 이태준의 고택으로, 예스러운 건축과 유적이 많은 성북동에서도 손꼽히는 한옥의 정취가 담겨 있다. ‘월북작가’라는 꼬리표 때문에 오랫동안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도 애용될 만큼 유명해졌다. 하지만 유명세와 상관없이 이곳은 늘 조용하고,평화로우며, 자연적이다. 따사로운 저녁 빛이 들 무렵 (가장 인기 좋은) 누각에 앉아 차향을 맡으며 아담한 정원을 바라본다. 사계절 피는 꽃이 다르니, 매번 보는 풍경도 다르다. 수연산방을 아무리 찾아도 질리지 않는 이유다.
요즘 주말을 보내는 가장 트렌디한 방법 중 하나는 광명에 위치한 이케아 매장으로 향하는 것이다. 하지만 눈을 좀 높이고 싶다면 이번 주말은 성북동으로 향하자. 고즈넉한 성북동 언덕 위에 한국의 옛 가옥 10채를 그대로 옮겨놓은 곳이다. 약 2500개의 고가구가 자리한 실내는 너무나 정갈하고 우아하다. 단순히 역사를 체험하는 공간이 아니다. 감히 말하건대,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박물관이다.
인왕산 자락에 위치한 한옥 도서관. 한옥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공공도서관이다. 고즈넉하고 운치 있어 ‘사색’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린다. 청운공원과 윤동주문학관, 북한산 둘레길이 가까이 있어 걷는 즐거움도 있다. 한옥의 돌담 위에 얹은 기와는 철거된 한옥의 기와 3천여 장을 재사용했다. 푸른 나무로 가득한 숲의 풍경은 이곳이 서울인가 싶게 만든다.
런던에서 오랫동안 사진작가로 활동하다 서울로 돌아온 루이스 박(Louis Park)이 종로구 익선동에 새로 만든 카페 겸 바다. 오래된 한옥을 개조하면서 그가 가진 작가로서의 감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오래된 기와로 한쪽 내벽을 쌓았고, 꽃무늬 방석과 자개로 만든 앉은뱅이 식탁들이 유럽의 가구들과 함께 자리해 있다. 빈티지와 식물에 유난히 큰 애정을 가지고 있는 루이스의 손길을 구석구석에서 발견할 수 있고 젊은 작가들이 협업한 작품들도 가구로 둔갑해 있다. 버터와 잼과 올리브를 따뜻하게 데운 크로아상과 내는 단촐한 메뉴들은 별로 특별할 게 없어 보이지만 손이 끊이지 않고 간다. 낮에는 카페로, 밤에는 바로 운영되며, 식물 안쪽에 건강한 피자를 선보이는 피자 바도 새로 문을 열었다. 익선동 이름을 알린 곳이다.
이곳에서의 참된 경험은 안국역에서 ‘뜰’로 가는 길부터 시작된다. 정독도서관 담을 따라 유난히 좁고, 제멋대로 휘는 꼬불꼬불한 언덕길을 오르는 길이 낭만 있다. 인사동 특유의 작은 주택들이 모여있는 도심 정경이 나오면, 곧 오른쪽에 10년 넘게 전통차를 우려온 한옥이 나온다. 시원한 마룻바닥에 양반다리로 주저앉아, 간단한 다과에 ‘허약 체질을 개선하고, 눈을 밝게 하는’ 뽕잎차를 홀짝일 수 있다. 통유리로 된 창문 너머로 연못과 정갈하게 가꾼 정원이 보이고, 음악은 가사 없이 나직하게 흘러나오니, 마음이 허약할 때 꼭 들러보기를.
2009년 익선동에 문을 연 전통 찻집.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아담한 뜰이 인상적이다. 주인은 7년 전에 한옥을 찾다 익선동의 작고 초라한 집을 발견했다. “지붕이 기와니까 이게 한옥이구나, 서까래(지붕의 뼈대를 이루는 나무)가 살아 있다니까 한번 고쳐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전문가의 지휘 아래 주인이 가족과 함께 직접 수리하며 지금의 모습을 만들었다. 뜰안은 2010년 개봉한 김정훈과 사이토 타쿠미 주연의 한일 합작 영화 의 주 무대인 ‘모란당’의 배경이 된 곳이다. 당시 배우들의 한국과 일본 팬들이 방문하며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으며, 영화 속에 등장한 쑥 가래떡과 콩설기 등은 지금까지 맛볼 수 있는 메뉴다. 몰라서 못 먹지 마셔본 사람은 다시 찾는다는 감잎차나 국화차, 차갑게 해서 먹으면 에이드처럼 새콤달콤한 송화 효소차 등이 있으며, 팥을 직접 불리고 삶아서 만드는 단팥죽은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 메뉴. 또한 곧 육포, 치즈와 함께 삼해소주를 소개할 예정이다.
“사람들이 찾아와서 이 거리를 느꼈으면 좋겠는데, 그러려면 앉아서 머물고 즐길 거리가 필요하잖아요.” 익동다방은 익선동이 좋아서 뭉친 6명이 ‘익선다다’라는 법인을 세우고 투자를 받아 만든 공간이다. 골목에서 다시 안쪽 골목으로 들어가야 제 모습을 다 보여주는 익동다방은 한옥의 느낌을 그대로 담고 있으면서도 모던하다. 익동다방의 대표 중 한 명인 박지현 작가와 외부 작가의 컬래버레이션 작업으로 3개월마다 바뀌는 내부도 그렇다. 익동다방은 벌써 여러 차례의 잡지 화보 촬영이 진행되었으며, 젊은이들의 SNS에 단골로 등장하는 장소가 되었다. 완전한 복원보다 변화를 최소화하되 ‘트렌드’를 키워드로 삼은 이들의 선택이 옳았다는 증거다. 커피를 대하는 방식은 동네와 닮았다. 에스프레소 머신을 ‘거부’하고 드립으로 커피를 내리며 손으로 프렌치 프레스를 70번씩 쳐서 우유 거품을 만든다. 커피를 주문하면 5분 이상 기다려야 하지만, 이곳에선 기다림이 지루하지 않다.
원래 있었던 것처럼 스며들고 싶어 개업식도 안 하고 조용히 들어왔다는 박지호 대표는 일주일 내내 문을 여는 것에 대해 “생각만큼 바쁘지 않다” 고 말하며 웃었다. 왜 이름이 거북이슈퍼냐고 누가 물어보면 “충청도 출신이라 느려서 그래요” 라고 장난스럽게 말하지만 사실은 바쁜 서울 사람들이 이곳에서 여유를 느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지은 이름이다. 가끔 사람들이 술집으로 오해하지만, 이곳은 옆집 꼬마가 사탕을 사러 오고 앞집 아저씨가 담배 사러 오는 엄연한 슈퍼다. 그리고 어린 시절 가게 모습을 떠올린 박지호 대표가 먹태와 쥐포 등의 안주를 연탄불에 구워 주는 가맥(가게맥주)집이기도 하다. 국산맥주만 들여놓고 맥주를 시키면 매일 트는 밥 말리 노래를 패러디해 냉장고에 붙인 스티커 ‘No Cup, No Cry’에 따라 예쁜 컵을 준다. 이곳에서 맥주만 마실 수 있는 건 아니다. 과자나 컵라면을 먹으며 쉴 수 있다. 참고로 제일 잘 나가는 아이스크림은 ‘거북이알’.
우연치 않게 익선동에 발을 딛게 된 김리나 대표. 그녀는 동네가 좋아 조그맣게 카페를 열어볼까 하는 생각으로 14년 지기 친구와 함께 익선동121을 시작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그녀의 말처럼 1년 뒤 카페는 소문난 맛집이 되었다. 점심시간이면 주변 직장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멀리는 계동에서 산책 나온 직장인들까지, 전화 예약을 하는 손님도 있다. 콘텐츠 기획을 하는 김리나 대표와 출판사를 운영하는 조동욱 대표는 셰프 없이 “우리가 집에서 먹던 음식을 내자”고 마음먹고 좋은 재료로 친숙한 맛을 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나온 메뉴가 카레와 부추 된장비빔밥. 부추 된장비빔밥은 한의사가 직접 콩을 재배하고 만든 된장을 공수해 된장국을 끓이고 수육을 곁들였다. 자극적이지 않고 담담해 시골밥상처럼 편안한 맛. 카레는 토마토 치킨 카레가 대표적이지만, 채식주의자를 위한 렌틸콩 카레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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