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금융의 중심 도시 홍콩에는 손님 주문에 따라 술값이 실시간으로 변하는 바가 있다. 수요와 공급이 주식시장의 주요 변동 법칙 중 하나인 점에 착안해 콘셉트를 잡은 바다. 인기가 많은 술은 가격이 올라가고 주문량이 적은 술은 가격이 내려가는 것인데, 실제 주식시장을 방불케 하는 전광판에서 실시간으로 술의 가격을 확인할 수 있다. 손님들은 술을 한 잔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실시간으로 변하는 전광판을 보면서 값이 내려간 술을 재빨리 주문해 마시는 등 색다른 재미를 느낀다. (물론 금융권에서 일하는 듯한 멋진 수트 차림의 손님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지만.) 이처럼 단순한 식사를 넘어 여러 재미들을 찾는 ‘이터테인먼트’가 새로운 음식 트렌드가 되고 있다. ‘먹다’의 ‘Eat’과 ‘놀이’의 ‘Entertainment’를 합성한 단어로, 식문화가 이제 즐거운 경험을 포함한 문화적 콘텐츠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터테인먼트’가 최근 들어 생겨난 개념은 아니다. 1998년 세계적인 경영 컨설턴트 조셉 파인 2세와 제임스 H. 길모어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서 처음 언급한 ‘경험 경제 시대’가 그 시초라고 볼 수 있다. 제품과 서비스만으로는 고객을 잡을 수 없고, 고객은 개별화된 경험을 원하며 그런 경험에 기꺼이 돈을 지불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이들이 말한 경험 경제가 식문화와 만나서 탄생된 것으로, 이미 미국에서는 1990년대 말부터 붐이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터테인먼트 레스토랑의 정의는 인기 영화의 상징물이나 소품, 볼거리, 기념품 코너를 갖춘 복합 레스토랑을 뜻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테마로 만든 뉴욕의 레스토랑 ‘버바검프(Bubba Gump)’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음식을 먹으면서 영화 속 주인공 ‘포레스트’가 되어 실제 입었던 옷을 구매하고, 사진도 찍고, ‘Run! Forest, Run!’도 외쳐보는 것.
지금은 음식, 서비스, 분위기와 배경 등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총체적 경험으로 이터테인먼트의 의미가 확장되었다. 두바이에서는 열쇠가 있어야만 입장이 가능한 레스토랑 ‘파커스(Parker’s)가 화제다. 사람들은 레스토랑에 가기 위해 SNS에만 제공되는 열쇠의 위치를 찾으려 혈안이 되고, SNS상에서는 ‘#열쇠를찾았다(#Igotakey)’와 같은 해시태그까지 유행했다. 지난해 서울에서도 열렸던,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흰색으로 입고 한데 모여서 만찬을 즐기는 시크릿 디너 파티 디네앙블랑(Denier en blanc) 역시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 모두 이터테인먼트를 경험할 수 있는 예라 볼 수 있다.
이제는 서울에서도 이터테인먼트 공간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자신의 도시에서 살던 현지인들이 모르는 사람을 초대해 그 나라의 전통 음식과 함께 식문화를 함께 경험하고 공유하는 문화, 바로 소셜 다이닝이 한 예다. ‘애니스푼’, ‘집밥’ 등의 소셜다이닝 사이트를 통해서 신청할 수 있는데, 모르는 사람과 식사를 즐긴다는 그 자체로 참여자들은 색다른 즐거움을 느낀다. 와인을 마시며 명화를 그릴 수 있는 클래스 ‘페인트 투나잇’이 있는가 하면, 365일 할로윈 콘셉트로 운영되는 ‘마녀주방’도 먹으면서 즐길 수 있는 색다른 공간이다. 일상의 틈새를 파고든 카페도 있다. 해방촌에 위치한 ‘런드리 프로젝트’는 카페와 유료 세탁방을 동시에 운영하는 곳으로, 세탁시간 동안 손님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커피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거기 어땠어?”라는 질문에 “정말 맛있었어”가 아닌 “정말 재미있었어”란 대답을 하게 되는 곳.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제공하는 기발한 레스토랑들은 계속 늘어날 것이고, 2017년 우리는 혀뿐만 아니라 몸이 원하는 ‘미각’도 찾아 다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