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예 (88’)
“저는 한국에서 태어나자마자 필리핀으로 이사를 갔어요. 그 후로 싱가포르, 홍콩, 중국, 일본... 홍콩은 벌써 말했나요?” 4개 국어를 유창하게 사용하는 그녀는 열심히 기억을 더듬으며 광대뼈를 살짝 올린 채 미소 짓는다. 2013년 말에 그녀는 새누리당 나경원 의원 밑에서 일하기 시작하며 국회의사당에 근무하는 공무원이 되었다. 안정적인 직장이었지만 하루 14시간, 일주일 내내 출근하면서 번역 작업, 외교 관련 문서 작성, 외국 손님 접대까지, 끝이 없는 일과를 보냈다. “제일 많이 들은 말은 ‘센스 있게’였어요. 전단지를 나눠줄 때도, 명함을 건넬 때도 모두 ‘센스’ 있게 해야 했어요. 국회의원은 아무래도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직업이니까 사소한 것에도 신경을 많이 썼죠.” 하지만 그녀가 국회의사당을 떠난 이유는 근무시간도, 스트레스 때문도 아니었다. “의미 있는 일에 참여하는 느낌을 못 받아서”였다. 8월에 국회의사당을 떠나고 3개월 후 그녀는 여행 앱 ‘티버디’(T-buddy)라는 스타트업을 설립했다. “학사, 석사도 마쳤으니 부모님은 내가 더 안정적이고 고소득이 있는 직업을 얻길 바랐어요.” 티버디 팀에는 그녀 빼고 40대 아저씨들뿐이지만 농담을 나누며 ‘오빠’라고 부르는 모습에서 서로 아끼는 게 눈에 보인다. 지금은 몇 시간 일하냐는 질문에 그녀는 다시 미소를 짓는다. “하루에 12시간 정도 일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전 좋아요. 우리 프로젝트의 가능성을 믿고,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지만 무언가를 제가 창작한다는 점에 성취감을 느껴요. 여기서는 말과 행동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