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서울에서 직장인으로 살기 참 힘들 때가 있다–사무실에 하루 종일 틀어박혀 일만 하다 보면 밖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저 귀찮은 일이 되어버린다. 주로 아저씨들의 고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젊은 세대도 크게 공감하는 부분이다. 퇴근 후 흰 셔츠에 양복바지 입은 회사원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어른아이가 되어가는 바깥은 서울의 친근한 여름밤 풍경이다. 동네마다 그런 골목이 있다. 을지로 골뱅이 (무침 골목)도 그중 한 곳인데,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야외의 플라스틱 의자와 테이블에 앉아 모든 걸 내려놓고 편하게 술을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밤 놀이터라고나 할까. 종로3가 고기골목도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제주아방 (종로구 돈화문로11다길 10, 02–745–4728)은 다양한 제주산 돼지고기 부위를 제공하는 것으로 손꼽힌다. 고기를 맛나게 먹은 후, 비벼주는 김치볶음밥으로 식사를 마무리하는 것도 역시 필수코스. 여름밤, 밖에서 먹는 장소로는 요즘 편의점 앞도 인기다. 합정동 양화로 6길을 지나다 보면 CU 와 세븐일레븐이 대각선으로 한 블럭 정도 거리에 마주보고 있는데, CU 밖에 텔레비전까지 설치되어 있어 큰 스포츠 경기가 있는 날이면 사람들로 북적인다. 또 세븐일레븐 앞에서는 길거리 공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태원 쪽에서는 경리단길 맥파이 바로 옆 우리수퍼가 다양한 종류의 희귀한 세계 맥주를 파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베를린으로 가는 언덕 위에 새로 생긴 GS25 앞은 새로운 핫플레이스다. 녹사평역 사거리가 내려다보이는 야경에 여기 앉아서 술을 마시는 친구들은 하나같이 멋쟁이다. 자,이쯤 되면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밖에서 술 마시는 것이 꼭 아저씨 스타일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서울 사람들 속에는 여름밤 가맥의 피가 진하게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