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선동 동네 (PHOTOGRAPHS: PARK JUNG-WOO)
PHOTOGRAPHS: PARK JUNG-WOO

익선동의 시간은 느리게 간다

종로 한가운데에서 아주 오래된 서울을 찾았다.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익선동 166번지 일대. ‘한옥 섬’이라 불리는 동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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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비스 앰배서더 호텔 인사동의 야외 옥상 정원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주변 빌딩들이 무색하게 낮게 몸을 숙이고 있는 기와 지붕이 눈앞에 펼쳐진다. 70 – 80년 된 한옥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낙원상가 뒤편의 낡은 한옥 주택가. 익선동 166번지 일대의 한옥 100여 채. 한옥이 즐비한 북촌이 관광 명소가 되고 주변이 빌딩으로 하나 둘 채워질 때도 변함없이 옛 모습을 지키고 있는 숨겨진 동네다. 익선동 요정 여종업원들을 상대로 생긴 점집이 20여 곳 가까이 들어서기도 했지만, 이것도 옛이야기다. 익선동의 한옥은 대부분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에 건축된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부동산 개발업자라고 불리는 정세권 선생이 1910년대 후반부터 당시 건설회사인 ‘건양사’를 운영하며 주거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급형 한옥을 지어 서민들에게 분양한 것이다. 익선동에는 전통 한옥과 달리 한옥과 양옥의 중간 형태의 한옥이 대다수다. ‘ㅡ’ 자, ‘ㅁ’ 자, ‘ㄷ’ 자 등의 형태로 구조도 평수도 각기 다르다. 익선동의 역사에 관심이 많은 전통 찻집 ‘뜰안’의 주인장은 “밖으로 난 창문의 창틀 같은 것들이 지금은 구하지 못하는 일제시대의 것도 간혹 있어서 그런 것만 찾아 찍는 일본 작가가 온 적이 있다”고도 전했다. 익선동은 1997년 재개발 추진 구역으로 논의되고 2004년 재개발 바람에 휩싸여 사라질 뻔했으나 익선동을 지켜야 한다는 시민들의 주장으로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로버트 파우저 전 서울대 교수는 익선동의 한옥 마을이 “20세기 도시형 한옥의 본모습을 가지고 있어 건축적 가치가 높다”고 말한 바 있다.
 
세월을 고스란히 담은 익선동의 예스러운 분위기에 반한 젊은이들이 1–2년 전부터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공간을 하나 둘 만들었다. 취재 중에 만난 ‘익동다다’ 팀의 두 번째 결과물인 그로서런트 ‘열두달’의 공사 또한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변화의 물결을 타는 익선동의 상업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서울의 오래되고 잊혀진 공간에 대한 가능성, 보존과 개발을 이야기하는 책 "리씽킹 서울"은 익선동의 가치를 주목하며 단순히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운 건축물을 짓는 개발을 비판한다. “우리가 외국의 도시를 방문하는 이유는 도시의 대형 건물을 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소비하기 위해, 즉 도시의 역사를 이해하고 문화를 즐기기 위해 가는 것이다. 따라서 도시의 건물 자체보다는 건물의 역사성이나 건물이 가진 문화적 기능이 중요하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야기를 나눠본 익선동의 젊은 주인들은 이곳을 사랑하고 의미를 보존하면서 발전하는 방향을 찾았다는 것이다. 이들의 착한 의도가 이 ‘한옥 섬’을 그대로 미래로 보내는 길이 되었으면 한다.

익선동에서 먹고 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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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일당
에일당
에일당(Ale堂). 에일 맥주를 파는 집이라는 뜻이다. 애일당(愛日堂), 하루 하루를 사랑하며 사는 집이라는 뜻이다. 이 두 가지 사랑스러운 뜻을 지닌 익선동의 에일당은 백 년 된 한옥을 개조한 맥주 펍이다. 뜨거운 볕이 내리쬐던 어느 봄날 대낮에 찾은 에일당은 그야말로 ‘핫’했다. 남향에 마당을 두어서인지 유리 천장을 통해 부서질 듯 쏟아지는 태양 볕이 ‘핫’했고, 여름이 오려면 멀었는데도 대낮부터 마당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낮맥’을 즐기는 모습이 ‘핫’했다. 2016년 12월 익선동 세 번째 골목에 문을 연 에일당은 오래된 한옥의 원형을 보존하면서도 내부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 거칠면서도 따뜻한 느낌의 빈티지 가구와 인테리어, 생동감을 주는 따스한 생화의 조화가 편안함을 선사하는 곳이다. 에일당에서는 정통 영국식 수제맥주인 굿맨 브루어리의 모든 맥주를 판다. 인기 아이템은 테이블 엠버와 테이블 페일로, 높지 않은 알코올 도수에 각 두 잔을 연거푸 마셔도 꿀떡꿀떡 잘 넘어가는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마당 중앙으로 강하게 내리쬐는 뜨거운 볕 아래서 마셔보길 추천한다. 그전까지 루프톱에서의 ‘낮맥’이 인기였다면, 올해는 테라스에서 즐기는 ‘낮맥’이 대세가 될 것 같다. 물론 여기에는 에일당이 큰 몫을 차지할 테고. 맥주와 곁들이기 좋은 수제 소시지와 피자도 준비되어 있다. 또 에일당은 훌륭한 스페셜티 커피를 맛볼 수 있는 커피몽타주의 원두를 사용한 커피를 함께 판매하고 있어 ‘낮맥’을 부담스러워 하는 일행과 함께 와도 언제나 괜찮은 곳이다. 인기가 좋은 티라미수나 바나나 브레드 같은 디저트도 함께 즐겨볼 것을 추천한다. 한가지 잊은 것이 있다. 에일당이 ‘핫’한 또 다른 이유. 바로 한옥에서 흘러나오는 그루브한 음악이다. 한옥펍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에일당은 유리 천장을 통해 날씨의 운치는 누리면서 오래된 삶의 정취도 느낄 수 있는 전통적인 곳, 낮맥을 즐기는 트렌디한 사람들과 함께 절로 리듬을 타게 만드는 ‘힙’한 음악이 가득한 익선동의 진짜 핫플레이스다.
  • 차 가게
  • 종로구
프루스트
프루스트
익선동에 위치한 프루스트는 향기 체험 숍 겸 홍차 카페다. 계산대를 기준으로 공간이 둘로 나뉘는데, 한쪽에서는 차를 마실 수 있고 반대쪽에서는 향을 테스트하고 향수, 디퓨저, 캔들 등을 만들어볼 수 있다. 음료 메뉴는 단출하다. 아삼티를 베이스로 한 로열 밀크티와 연유를 넣은 타이 밀크티, 그리고 장미향을 더한 가향차 한 종류가 있다. 그중에서는 로열 밀크티가 가장 인기 있다. 선인장에서 추출한 아가베 시럽으로 당도를 맞춘 게 특징인데, 달지 않고 가볍고 은은하다. 아이스 로열 밀크티는 예쁜 병에 담아 판매해 소유욕을 더욱 자극한다. 냄새를 통해 과거의 일을 떠올리는 프루스트 현상에서 따온 이름답게 이곳의 홍차와 마들렌의 결합한 세트 메뉴도 있다. (프루스트 현상은 주인공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의 냄새를 맡고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에서 유래했다. ) 프루스트는 익선동의 여러 가게가 그러하듯 한옥을 개조해 만들었다. 나무 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자그마한 안뜰과 내부가 보이는 형태다. 기와지붕과 기본 골조는 살리고, 전체적으로 하얀 페인트를 칠한 뒤 유리와 금속장식을 활용해 꾸며 깨끗하고 현대적인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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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시집
요즘 가장 핫한 동네 익선동에 문을 연 와인 바. 사실 ‘바’보다는 ‘와인 포차’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곳으로 주인장은 저렴하고 우수한 품질의 와인을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동네가 뜨기 전부터 주변에 자리 잡고 있던 게이 바들 덕에 예쁘게 차려입은 게이 친구들이 와인잔을 기울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주변에 게스트하우스와 호텔들이 포진해 있어 여유로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외국인 여행자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마치 바르셀로나나 방콕의 골목길에 있는 노천카페 같은 분위기다. 서울의 중심에서 이국적인 분위기를 즐기며 와인 한 잔 마시고 싶을 때 ‘시집’을 떠올리자.

오래된 맛집을 찾아서

  • 한식
  • 종로구
  • 가격 1/4
수련집
수련집
커피 한 잔을 마셔도 4000원이 거뜬히 넘는다. 수련집은 서울에서 가장 저렴한 백반집이다. 김치찌개 또는 동태찌개 한 사발과 다섯 가지 반찬 다 해서 3500원이다. 점심임에도 거한 반주를 곁들이는 어르신이 많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허기를 달래주며 추억과 위로가 된 밥집이다.
  • 인사동
  • 가격 1/4
찬양집
찬양집
최근 미식 프로그램인 "수요미식회"에 등장하며 젊은이들에게 주목을 받았지만, 찬양집은 1965년 문을 연 소문난 칼국수 맛집이다. 바지락과 홍합 등을 푸짐하게 올린 해물칼국수는 찬 바람 불기 시작하는 가을에 더욱 생각난다. 위치는 돈의동이지만, 익선동과 몇 발자국 떨어져 있지 않으니 찾아가볼 것.

디자이너 스튜디오 & 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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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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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쉘프 익선점
더 쉘프 익선점
서울에서 가장 뜨거운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익선동이 최근 새로운 공간들로 다시 뜨겁다. 익선동에 소위 ‘핫 플레이스’라 불리는 곳 대부분이 한옥을 개조한 공간이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한 곳이 유독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오랫동안 붙잡는다. 이 곳은 바로 편집숍 ‘더 쉘프’의 첫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 전 세계의 다양한 슈즈 브랜드를 소개하는 편집숍 더 쉘프는 백화점에만 입점해 있다가 익선동에 최초로 단독 매장을 열었다. ‘여긴 뭐하는 곳이야?’라는 말과 함께 호기심 어린 눈으로 매장 앞을 기웃거리다 들어선 사람들을 따라 에디터도 매장 안으로 발을 들였다. 놀랐다. 익선동에 이런 규모는 없었다. 이런 공간도 없었다. 더 쉘프, 이곳으로 인해 익선동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는 건 분명해 보였다. 한옥, 그리고 널찍한 내부의 선반 위를 가득 채운 스니커즈들. 어울릴 듯 말 듯한 이 둘의 기막힌 앙상블이 더 쉘프의 가장 큰 매력이다. 대표 브랜드는 1911년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수페르가(Superga)로, 초창기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클래식한 디자인으로 한국에서도 인기가 좋다. 이 밖에 1905년 영국의 작은 작업장에서 태어난 골라(Gola), 스페인의 핸드 메이드 슈즈 브랜드 마이앙스(Maians) 그리고 스페인의 친환경 신발 브랜드인 포토막(Potomac) 등이 있는데, 취급하는 브랜드 모두 현재까지 옛 디자인과 감성을 유지하고 있는 헤리티지 브랜드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브랜드들이 서울의 근대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익선동과 많이 닮아있다는 점.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를 더해가는 것’, 더 쉘프가 전개 중인 브랜드의 특성이자 옛 서울의 정취를 간직한 익선동의 매력이다. 더 쉘프는 매 시즌마다 한 가지 주제와 브랜드를 선정해 매장 한 켠에 마련된 쇼케이스를 통해 선보일 예정이다. 백화점 문을 뚫고 그와 어울리는 익선동에 터를 마련한 이곳의 날갯짓이 기대되는 바다.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한옥 편집숍으로서의 매력과 동시에 휴식 공간으로서의 매력도 뽐낸다. 커피 애호가 에디터의 입맛을 사로잡은 훌륭한 커피는 물론 페로니, 에스트렐라 그리고 기네스 등의 세계 맥주도 즐길 수 있다. 이 맥주들은 더 쉘프의 주력 브랜드 국가인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아일랜드)를 대표하는 주류다. 맥주를 마시며 각 국의 브랜드 스토리를 듣는 재미까지 더했다. 그래도 매력을 못 느끼겠다면, 매장 2층에 있는 루프톱에 올라가 한 눈에 들어오는 익선동 정취를 느껴보자. ‘낮맥’하기에 둘도 없이 좋은 곳이다. 끊이지 않는 매력으로 가득 찬 공간, 들어올 때 읊조렸던 ‘여기는 뭐하는 곳이야?’라는 질문을 옥상에서도 똑같이 하는 당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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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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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너리랩
오디너리랩
커튼을 친 유리 위로 익숙하면서도 낯선 동네의 지도가 붙어 있다. 오디너리랩은 두 명의 디자이너로 구성된 디자인 스튜디오. 브랜딩과 그래픽, 패키지 등 특정 분야에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작업을 해오고 있으며, ‘아마추어서울’이라는 지도를 만드는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아마추어서울은 ‘주목하지 않았던 곳을 주목하는 주관적 디자인 여행 가이드맵’으로, 두 번째 호가 바로 이들이 터를 잡은 익선동이었다. 때때로 길을 물어보거나 밖에 붙은 지도 작업을 궁금해하는 이들이 문을 두드린다. 문이 열려 있고 업무로 바쁘지 않을 때에는 지나가다 들러도 좋다는 이들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본다면 아마 친절하게 답변해줄 것이다. "타임아웃 서울" 팀을 맞아주었듯이.

익선동에서 마주친 사람들

세탁소 할아버지

“옛날하고 지금하고 많이 달라졌지. 여기에서 일한 지는 한 20년. 옛날 종로에는 세탁소가 많았었어. 왜 그런지 알아? 여기 앞이 다 뭐였는데. 여기가 오진암 자리, 저기가 명월관, 대하. 전부 요정이었으니까 세탁소가 엄청 많았지. 지금은 아마 그때에 비하면 반도 안 되지. 90년대 초부터 단속을 시작했거든. 옛날에는 이 길, 앞에 길, 오후 1–2시면 아가씨들이 바글바글했어.”

오디너리랩 디자이너 유혜인

“익선동에 처음 오게 된 것은 2012년 봄 즈음이었다. 번화가에서 골목 하나만 더 들어서면 시골 할머니 댁에 온 것 같은 동네가 펼쳐진다. 먹으면서 일하라고 과일 한 그릇을 무심하게 주고 가는 할머니가 있는 그런 곳이다. 조용한 낮과는 다르게 밤이 되면 직장인들이 하루의 고단함을 풀며 고기와 술을 즐기는 시끌벅적한 골목이 된다. 아마 이런 점도 익선동의 매력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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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알렉스

“재미교포인데 아빠가 이 동네에서 사업을 하셔서 오게 됐다. 한국도 그렇고 온 지 한 달밖에 안 됐다. 동네에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이 사셔서 아무래도 내가 외부인이라는 게 티가 나는 것 같다. 그런데 동네가 워낙 작아서인지 벌써 내가 누구네 집 아들인지부터 시작해서 우리 집 강아지 이름까지 다 안다. 이곳에서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벌써 정이 많이 들어서 걱정이다.”

익선동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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