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서동을 들어본 적 있는지. 가회동과 안국동, 삼청동, 계동 등 흔히 북촌이라고 뭉뚱그려 부르는 청계천과 종로의 윗동네, 그 안에 원서동이 있다. 누군가는 작은 퍼즐 조각처럼 마을이 나뉜 북촌에서 원서동을 따로 떼어내는 게 무슨 소용이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창덕궁 돌담길과 맞닿은 원서동에 발을 들이기 시작하면 이곳이 주는 고요함이 꽤 특별한 것임을 알게 된다(주소가 새롭게 정비되며 요즘에는 원서동 일대를 창덕궁길이라고 부른다).
원서동은 창덕궁 후원(비원)의 서쪽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 원서동을 방문하면 창덕궁 돌담과 일반 가정집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붙어 있는데, 창덕궁 후원을 마치 뒷마당처럼 두고 빨래를 너는 주민들을 보면 이 동네의 차분한 공기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알 것 같다. 북촌 8경 중 북촌 2경인 공방길도 원서동에 속한다. 옛 공방길은 궁중음식원 등 과거 왕실 일을 돌보던 사람들이 살던 곳이다. 최근에는 옛 공방길을 따라 21세기의 공방길이 형성되었는데, 이들 모두 한옥이 주는 고즈넉한 분위기를 여전히 간직한 원서동이 좋아 터를 잡기 시작했다. 쇼룸을 겸한 공방들은 판매를 위한 곳이라기보다 생활을 위한 공간들로, 몇몇은 문을 열고 닫는 시간을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지만, 문에 달린 작은 명패를 보고 전화를 하면 차분히 반겨준다.
원서동은 문화재 보호 규제 덕분에 높은 건물은 찾아볼 수 없다. 흔한 밥집조차 없다. 카페 두세 곳이 있을 뿐이다. 안국역 3번 출구로 나와 원서공원과 창덕궁 사이에서 시작해 원서동 빨래터까지, 하나로 길이 쭉 이어진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낮은 건물 위로 보이는 하늘과 창덕궁 후원에서 바람을 타고 오는 소나무 냄새 등에 도심에 있는 것 같지 않은, 꽤 감상적인 기분이 든다.